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은 Nov 19. 2023

#15 첫눈이 올까요?

 전국적으로 첫눈이 내렸고, 드물게 내가 사는 지역에도 11월에 이른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하필 내가 잠든 사이에. 전날 밤하늘이 너무 깨끗해서 눈이 올 것만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 올 줄이야. 나는 눈이 올 것 같은 예감은 잘도 느끼면서 첫눈은 항상 놓치고야 만다. 나는 얼마나 많은 첫눈을 놓쳤을까. 그저 지붕 위에 쌓여있는 눈을 보고도 그걸 첫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눈이 내리는 순간을 내가 보지 못했다면 그건 첫눈으로 쳐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전국적으로 첫눈이 내리고 라디오에서도 첫눈에 대한 이슈로 떠들썩하다. 그중에서 내 귀가 쫑긋할 수밖에 없는 질문과 대답이 흘러나온다. 첫눈은 누가 정하는 거냐는 물음 그리고 그건 기상 관측소에서 관측자가 눈이 내리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된 것이 첫눈이라는 대답. 거봐, 그럼 내 기준으로는 아직 첫눈이 오지는 않은 게 아닐까? 내 눈으로 내리는 눈을 본 게 아니니까. 그건 기상 관측소의 관측자에게나  첫눈이지, 나의 첫눈은 아니니까.      


 고작 첫눈이 뭐라고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나 싶겠지만, 눈이 귀한 아랫동네에 사는 나에게 첫눈은 무언가 로맨틱한 의미가 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니 소중한 사람과 보고 싶은 마음, 소원을 빌면 이뤄질 것만 같은 기분, 사랑이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뭔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릴 때는 아주 잠깐 싸락눈만 내려도 소중한 사람에게 ‘지금 첫눈 와, 창문 열어봐.’와 같은 문자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런 소중한 시간을 나눌 때의 따뜻함과 우리만의 긴밀한 비밀이 생긴 것 같은 순간을 만들어 주는 첫눈이 나에게는 너무 소중했다.      


 그러니 이번처럼 이미 첫눈이 내렸다고 동네방네 선포되면 내 기분이 어떻겠나. 그래서 나는 귀를 닫고, 쌓인 눈을 외면한다. 아직 첫눈이 오지 않았다고. 여기 쌓인 게 눈이긴 눈인데 그건 지나간 눈이고 첫눈은 아니라고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생떼를 부린다.     


 이미 내려버린 눈으로는 내 낭만을 채울 수 없다. 그러니 올해는 아직 나에게 첫눈이 오지 않았다고 우기는 것도 그냥 ‘아유, 재봐라. 아직도 첫눈 같은 거에 의미 부여하고 아직 애네~.’하고 좋게 넘어가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느 날 나에게서 첫눈이 왔다는 문자를 받는다면, 당신이 아주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주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14 어서 나를 벗어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