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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Dec 21. 2023

#25 혼술하고 싶은 밤

 나는 20살이 되기 전까지 다섯 식구가 복작거리며 살았다. 그리고 집을 떠나 혼자 살게 되었을 때 예상과는 달리 ‘혼자’라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식구 많은 집에서 살다가 혼자 살면 더 외롭다고 하던데 나는 반대였다. 오히려 자유로웠다. 나는 빨리 혼자에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그건 집 안에서 한정되는 부분이었고, 집 밖으로 나서면 ‘혼자’라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간다. “몇 분이세요?” 물어오는 질문에 “혼자요.”라고 답하는 게 민망했다. 그리고 혼자 카페라도 가면 괜히 눈치를 보느라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었다. 혼자가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그런 아이러니한 20대 초반이었다.   

   

 어제는 어느 가게에서 혼술을 했다. 신청곡을 틀어주는 아주 안락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서 혼술을 한다는 게 어찌나 낭만 있었는지 모른다. 혼자 술을 먹으면 누군가에게 맞출 필요가 없다. 어색한 찰나에 안절부절못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순간만 즐기면 된다. 그리고 혼술의 가장 큰 장점은 조금만 먹어도 금세 술기운이 오르고 행복해진다.      


 어느 날은 혼술이 외로움을 불러오기도 했다. 아무리 혼자가 익숙한 사람이라고 해도 유독 고독이 짙은 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밤에는 술의 힘을 빌리고 싶어 진다. 억지로 밝은 곳으로 헤쳐 나가지 않고, 고독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행복할 때는 약간 행동이 부산스럽다면, 우울할 때는 행동이 느릿해진다. 술 한잔을 넘길 때도, 술잔에 술을 부을 때도 천천히 천천히다. 생각이 많은 만큼, 외로운 만큼 시계추가 무거워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찌 되었든 나는 혼자라서 고독을 느끼고, 또 혼자라서 행복도 느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혼자서도 내 생활을 잘 영유하고, 스스로를 잘 채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아마 그동안 받은 사랑을 연료 삼아 잘 지내고 있는 게 아닐까? ‘내 빵을 누가 먹었니, 내 옷을 왜 입었니, 왜 보일러를 껐니, 왜 맨날 나만 같은 껌을 주니 마니’ 했던 정겹게 소란스럽던 그 시절의 기억으로 나는 혼자서도 잘 서 있는 게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혼자보다 둘이, 그리고 여럿이 편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시간이 오기 전에 나는 온전히 내 시간을 혼자서도 잘 보내야겠다. 혼자 밥도 먹고, 혼자 여행도 가고, 혼자 술도 마시며 내 시간과 내 삶의 주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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