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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Jan 03. 2024

#29 방심하는 순간 방치!

 나는 방치에 도가 튼 사람이다. 내가 왜 갑자기 방치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잠깐 설명해 보겠다. 회사에는 화분이 여러 개 있다. 지난여름 장마 때 화분을 밖에 두면 좋을 것 같아서 밖에 화분 1개를 가져다 놓았다. 화분도 삭막한 사무실이 답답했던 것인지, 밖에 두니 조금 더 자유로워 보이고, 푸릇푸릇 생기 있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오늘, 푸르던 잎이 빨갛게 변한 화분이 아직도 밖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몇 달 동안 방치한 화분이 혼자 그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면서도 괜히 기특했다.      


 사실, 오며 가며 그 화분을 볼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 가는 바로 길목에 있었기에 마냥 잊을 수는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바람이 좀 차가워졌을 땐 ‘아 이제 추워지는데 안으로 들여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이미 등을 돌린 뒤였다. 나는 밖에 화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철저히 외면하고 방치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무관심 속에서도 스스로 색을 바꾸고, 꿋꿋하게 살아있는 그 화분이 기특할 수밖에.      


 회사의 화분은 내가 방치한 것 중에서 극히 일부다. 우리 집에는 내가 방치한 것들 투성이다. 아마 게으른 성격이 많은 것을 방치하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먹으려고 샀던 식료품들은 이미 제 수명을 넘겼고, 읽으려고 샀던 책들은 제 순서를 기다리느라 애가 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라면에 유통기한이 그렇게 짧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사실 유통기한은 충분했겠지만 깜빡 방심하고 존재를 잊었더니 방치가 돼버린 것이다.      


 집만 방치하면 다행이다. 내 몸도 아주 오랫동안 방치했다. 건강한 음식보다는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 지도 몇 년 째고, 귀찮다고 로션만 대충 벅벅 바르고 자는 것도 오래전부터 시작된 악습이다. 그 결과는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잠깐 회복기가 있었지만 방심하는 게 문제다. 잠깐 방심하고 해이해지면 몸은 빠르게 악습을 기억해 불러온다. 몸에 나쁜 게 맛있다고 몸에 안 좋은 게 편한 법이기도 했다. 해야 할 것들을 흐린 눈으로 외면하고 그냥 방치하면 그동안은 사실 편했다. 하지만, 뒷감당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나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오늘의 글은 어쩌다 보니 나를 마주하는 시간과 더불어 자기반성이 짙은 글이 되어버렸다. 내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방심했던 나를 다시 일깨웠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새해인 만큼 악습과도 멀어져 보자는 의미에서 희망차게 외쳐본다.      


방심하는 순간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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