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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Jan 02. 2024

#28 액땜

 이렇게 아파본 게 언제였나. 2023년의 거의 끝자락에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머리가 묵직해 도무지 운전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연휴 내내 집에만 있었다. 지난해를 돌아볼 정신도, 새로운 해를 맞이할 정신도 없어서 약 먹고 잠들기만 반복했다. 타지에서 아프면 서럽다는 말.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이렇게 절실하게 몸소 느낄 줄은 몰랐다. 왜 하필 지금 아파야 했을까.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12월 31일이었다. 아니, 벌써 올해의 마지막이라고? 조금 황당했다. 내가 생각한 연말은 분명히 아니었다. 여유롭게 가족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고, 텔레비전을 보며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그런 상상을 했었다. 다정한 인사로 시작하는 새해는 저 멀리 흩어지고, 홀로 신년을 맞이했다. 새해부터 어긋난 느낌이었지만 그저 액땜이려니 생각한다.     

 

 몸이 약해지니 정신도 약해졌다. 애써 멀리 던져놓은 당신 생각이 자꾸 났다. 조금만 기침해도 요란스럽게 걱정해 주던 당신이었는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 갇혀 추억만 더듬거렸다. 급격히 서러워졌다.      


 나이가 들면 생일을 챙기는 게 귀찮아지는 것처럼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무뎌지게 될까. 아니면 희망이 있는 한 새해는 계속해서 특별한 날일까. 나에게 새해는 새로 펼치는 다이어리 같은 것이었다. 뭐든 다 지우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날. 그간의 실수나, 상처나, 후회 같은 것들은 흔적도 없이 싹싹 지우고 새로 펼쳐진 다이어리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기회 같은 것. 그 어느 때보다 희망차고, 의욕적인 날이 새해였다.      


 1월 2일,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픈 몸도 적당히 회복되었고 출근도 무사히 했다. 1월 1일을 놓치니 새해부터 뭔가 삐끗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1월까지는 새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계획도 세우고, 지난해도 돌아보는 차분한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이번 감기가 2024년에는 더 행복하고, 더 성장할 거라는 성장통 같은 액땜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럼,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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