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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Jan 07. 2024

#33 익명의 편지 2

    

 너는 사람과 사람이 안았을 때 얼마나 큰 힘이 생기는지 알아? 여럿이서 하는 포옹 말고 단 둘이 안았을 때 말이야.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곡선이 부드럽게 만나 빈틈 하나 없이 꽉 차게 되었을 때 나는 큰 힘을 느꼈어. 빈틈이 없다는 건 마음과 마음이 맞닿게 되는 일인 것 같아. 나의 왼쪽 심장과 상대의 왼쪽 심장이 닿으면 꼭 2개의 심장을 가진 듯이 느껴지더라. 심장이 2개일 때 우리는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는 누군가를 안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겠지. 요즘은 그런 시간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밤에 문득 두려워지기도 해. 심지어 지금은 겨울이잖아, 이불사이로 들어오는 외풍이 사람이 없는 빈자리를 자각시키는 것 같아. 누구라도 끌어안고 싶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겠지. 빈틈없이 안고, 빈틈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시절이 그리워.     



 언젠가 그런 포옹을 한 적이 있어. 겨울에서 봄의 온기가 느껴지고, 겨울에서 겨울 나름의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포옹. 그건 오직 그 사람이라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아주 큰 힘을 얻었던 건 아마 따듯한 심장의 온기가 내게 전해져서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가 너를 안아본 적이 있었나. 네가 그렇게 힘들다고 했을 때 조언이랍시고 잔소리만 했던 게 떠오른다. 그때 그냥 말없이 너를 꽉 안아줬더라면 그게 힘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미안해, 그때 너를 안아주지 못해서. 언제라도 너를 다시 만나면 빈틈없이 안아줄게. 다시 만나기만 하자.      



 그런데 있잖아, 어떤 날은 가짜 온기에 속을 때도 있었어. 분명히 그 사람의 온기를 느꼈는데, 내가 착각을 했었나 봐. 그때의 나는 아마 어떤 위로 같은 것에 허덕이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쉽게 사람을 믿고 내어주는 품에 덥석 안겨버린 거지. 참 바보 같지? 너를 안아주지도 못했으면서 나는 그렇게 사람 품에 목메고 있었다는 게 말이야. 마음껏 비난해도 달게 받을게. 나도 그 시절의 나를 많이 질책했으니 말이야. 그러니 아무래도 쉽게 내어주는 품에는 기대지 않는 게 좋겠어. 너는 그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를 안았을 때를 가만히 그려본다. 온몸이 녹는 듯 마음도 녹을 게 분명해. 나는 네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니 얼른 나를 찾아와 줘. 지금 나는 너의 온기가 필요해. 너의 사랑이 필요해. 너무 늦지 않게 나에게 와줘 알겠지?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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