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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Jan 07. 2024

#32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어떤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연극이 모두 끝난 후 분장실에서 화장을 지우는 배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허무함과 고단함과 어딘가 공허한 표정이 담긴 그의 표정이 오래 머물렀다. 무대에서는 누구보다 화려했을 그 사람이 홀로 남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쩐지 나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향형의 사람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사회화가 되어 가끔 내가 내향형의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놀라는 사람도 생겼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어릴 때부터 나보다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나보다는 남을 과하게 배려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들어주고 웃어주는 시간이 더 길었다. 연극배우에 비유한다면 친구 1, 직원 1, 동료 1 정도의 조연 역할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나는 긴 시간 동안 순한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거나, 오랜 시간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돌아오면 분장실에서 화장을 배우는 배우의 모습이 내게서 비쳤다. 하하 호호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도 현관문이 열리고 내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마음이 풀어졌다. 예전에는 ‘아, 집이 최고야. 역시 사람들 속에 있는 건 기 빨리는 일이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단순한 감정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 속에서 정말 헤어지기 싫도록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날에는 아쉬움과 작은 방의 큰 적막에 쓸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어색한 상황들을 견디고 돌아온 후에는 고단하고, 얼른 가면을 벗고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자괴감을 느끼고, 어떤 날은 자존감이 낮아졌고, 어떤 날은 슬프기도 했다.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은 꼭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의미 있는 시간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소중하다. 즐거울 때는 소리 내 웃고, 슬플 때는 엉엉 울고, 표정 없이 가만히 있기도 하는 가식 없는 시간이 나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다.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어떤 분장도 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와의 시간.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양한 페르소나가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 가족들 사이에서의 나... 다양한 가면을 쓰고 벗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는 내향인과 외향인임을 떠나서 자기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얼마 남지 않은 주말,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대로 나와의 시간에서의 행복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오늘만큼은 연극이 없는 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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