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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Jan 05. 2024

#31 익명의 편지 1

 당신은 여전히 어둠이 무섭나요? 밤이 긴 겨울이 제일 싫다던 당신의 얼굴이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그래도 점점 낮이 길어지고 있다는 걸 가장 먼저 느낄 당신을 생각하니 어쩐지 안심이 되네요. 올해 겨울은 어떻게 나고 있나요? 차를 타고 다니는 나보다는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당신이 겨울의 풍경과 소리를 더 많이 들었겠죠. 당신의 겨울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저는 얼마 전에 제주에 다녀왔어요. 제 인생에서 그렇게 눈을 원 없이 본 적은 없을 거예요. 겨울 아침이면 ‘눈이 왔을까?’ 기대하며 창문을 열던 내 모습을 기억해 보세요. 제주에서 내가 얼마나 행복했을지 그럼 당신도 알 거예요. 분명히.


      

 눈이 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이번 제주에 갔을 때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만히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어봤어요. 잠든 아이의 새근새근한 숨소리 같기도 하고, 귓속말하는 다정한 목소리 같기도 하고, 언젠가 잠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소리 같기도 했어요. 그렇게 포근하고 다정한 소리가 눈에서 난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겨울의 눈이 생경한 나에게는 눈 내리는 소리가 참 낭만적으로 들렸답니다. 남쪽 동네에 사는 당신도 나와 함께 봤다면 우리는 행복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함께 불꽃놀이 보면서도 울던 우리였으니까.     



 겨울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는 걸 참 길게도 말했네요. 할 수만 있다면 내리는 눈을 모두 모아 당신 앞에 가져다 놓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보다 내리는 눈을 모두 당신 창가로 보낼 수 있다면 더 좋겠네요. 흰빛의 눈이 당신을 이끄는 반딧불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니 동굴 속에만 있지 말아요. 다정하게 내리는 눈을 놓치지 않게 나처럼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겨울을 기다려봐요.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어둠과 멀어지지 않을까요.      



 엉뚱한 얘기만 잔뜩 했네요. 당신의 겨울이 궁금한 나의 혼잣말이라고 생각해 줘요. 그러다 문득 눈이 내리면, ‘네가 정말로 눈을 보냈구나’하고 그저 웃어줘요. 당신 웃는 얼굴이 아주 그리워요. 오늘도 부지런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당신, 하지만 어둠과 싸우면서 떨고 있을 당신. 나의 온 마음과 온기를 담아 보내요. 곧 웃으며 만나요.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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