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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Jan 11. 2024

#35 선택할 수 있는 용기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는 용기와, 현실과 타협하는 용기 중 어떤 것이 더 대단한 것일까. 중학교 때부터 줄곧 경찰이 하고 싶었다. 대단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다. 당시의 나는 엄마와 함께 드라마“히트”를 열심히 봤었다. 그러던 중에 엄마가 ‘그렇게 고현정이 멋지면 경찰 해봐라.’하고 했던 게 장래 희망이 된 것이다. 그렇게 시답잖은 이유로 고착된 ‘경찰’이라는 직업을 위해서 고등학교 때는 3년 동안 사격부에 들어갔다. 격주였나, 한 달에 한 번 이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사격장에 가서 공기총도 쏘고, 권총도 쏘고, 클레이 사격도 했었다. 그리고 운 좋게 경찰 행정 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강의를 들을수록 ‘이게 나와 맞는 직업인가?’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경찰이라는 한 길만 보고 달려온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래서 휴학도 했을 때, 졸업 후에도 경찰 준비를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모르는, 그냥 바보가 되었다.      


 방황하고 도피했다. 사실상 지금 있는 곳도 도피성으로 오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시험에서 떨어졌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내 모습도 더는 싫고, 더 잘될 거라는 가능성도 없었기에 눈감고 도피한 것이다. 그렇게 3년을 버텼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른 갈림길에 선 것 같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많아졌다. 다양한 경험은 다양한 꿈을 꾸게 해주는 것일까. 새로운 길들이 눈에 보였다. 다양한 모임에서 포스터를 만들고, 배너를 만들고,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반응이 좋았다. 전문적인 디자인 툴을 다뤄서 만들어낸 작업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인정받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읽어주는 것에 대한 성취감이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점점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디자인도 배우고 싶고, 책도 내고 싶고, 이왕이면 강의도 하고 싶고, 작사도 하고 싶고 다른 사업도 하고 싶어졌다. 모두 헛된 꿈이라고 해도 이렇게 꿈꿔본 게 언젠가 싶을 만큼 기분은 붕 뜬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브레이크 거는 것은 아무래도 현실이다. 당장 눈앞의 현실. 정확히는 돈. 지금 내 일상을 단번에 끊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에는 생활비며, 관리비며 차량 유지비며 얽힌 것들이 많다. 차선책으로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하며 준비해야 하는데 그건 또 대단한 다짐과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내가 더 간절해져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현실에 타협하기는 싫고,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기는 두려운 상황이라는 말이다. 이런 나의 말과 행동이 우유부단하고 무르고 욕심 많고 비겁해 보인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말이다. 우선은 조금 더 꿈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찾아봐야겠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들을 모아 반드시 기회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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