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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Jan 12. 2024

#36 ‘시’를 품는 삶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시’였다. 대학교 강의실에서 창문을 보다가 마치 계시를 받은 듯 떠올랐던 나의 첫 시상으로 적었던 시. 시에는 관심도 없던 내가 이별 후유증으로 시를 적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종종 흔하고 뻔한 시를 적다가, 조금 다른 시도 적어 보다가, 어느 순간부턴 거의 쓰지 않았다. 시라는 것을 배운 적도 없이 삶의 애환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시를 쓰지 않는 순간에도 시상은 떠올랐다. 심야버스를 타고 갈 때, 여행할 때, 산책할 때 등 떠오르는 시상은 메모해 두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쌓인 메모들은 진짜 시가 될 때고, 수필이 되기도 했다. 때때로 시를 쓰고, 시를 잊는 것을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분명한 것은 마음속에 늘 시를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작년, 시를 배울 기회가 생겼다. 내가 다니는 책방에는 다양한 분야의 멋진 어른들이 있다. 그중에서는 늘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시인 선생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쾌한 시인 선생님이 시를 창작하는 수업을 한다는데 이건 내게 내려진 두 번째 계시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기회를 덥석 물었다. 수업 시간에는 다양한 작가의 시를 함께 읽었다. 은유도 배우고, 비유도 배우고, 추상어도 배웠다. 이런 기초적이고 중요한 것들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마음대로 시를 쓰던 시절이 부끄러웠다.     


 시를 쓰려면 생각을 정말 많이 해야 한다. 마음속에서 시상이 ‘탁’하고 떠오르면 그때부터는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 소재를 잡는 것도 중요하고, 그 소재를 잘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뻔한 클리셰는 시에서 피해야 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나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담아내야 한다. 그러려면 정말 하루 종일 시 생각을 해야 한다. 하루가 뭐야, 시가 완성될 때까지 생각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도 시를 쓰는 게 즐거워졌다. 좋은 시도 많이 알게 되는 것도 좋고, 내가 쓴 시를 나누고 피드백을 듣는 시간도 설렌다.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레발도 기분이 좋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2주에 한 편은 써야 한다. 시를 써야 하는 의무감이 부담되지 않고 그저 또 한 편의 시를 완성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아끼고, 잘 다듬어 내 손을 떠나보내게 되는 날을 기대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모두 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속에 ‘시’를 품고 있지 않으면 단 하나의 시로도 쓰이지 않을 것이다. 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소리 없이 소멸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꼭 시를 쓰지 않아도 마음속의 이야기를 소리 내어 주면 좋겠다. 그 소리를 들은 어느 시인의 마음에 ‘탁’하고 걸리면 시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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