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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Jan 14. 2024

#37 겨울 바다, 맹렬한 따뜻함

밤바다를 듣는다. 하늘이 맑은 덕분에 오랜만에 별을 본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하얀 파도가 거세게 부서진다. 까만 바다 저 멀리 고기잡이배의 불빛이 아른거린다. 나는 드넓은 바다를 짐작만 할 뿐이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바다가 보고 싶었다. 특별히 마음이 답답하거나 힐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바다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쉽게 엄두를 낼 수는 없었다. 그 맹렬한 추위를 견딜 자신이 없었는데 어떤 ‘우연’이 나를 겨울 바다 앞에 세웠다.     



 예상대로 겨울 바다는 거셌다. 바람도 거세고, 파도도 거셌다. 다만, 그 앞에 서 있는 나는 되려 차분해져 갔다. 파도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파도 소리에도 메아리가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제각각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그 끝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왜인지. 그건 그리움이었을까, 서글픔이었을까, 환희였을까.      



 바다, 그 속에도 시간이 있을까. 우리가 사는 시간처럼 낮과 밤이 있을까. 어쩌면 바다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반대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소란스러운 우리의 낮에는 바다는 더없이 고요할 뿐이고, 고독한 우리의 밤에 바다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것을 알고 고기잡이배는 이 밤에 저 먼바다로 나아가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그 많은 생명의 움직임 앞에서 위로받고 있는 게 아닐까. 엉뚱한 상상이다.      



 그토록 원하던 겨울 바다 앞에 섰다. 바다는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질책하지 않는다. 그저 파도칠 뿐이다. 그 맹렬함에 나는 따뜻해진다. 또 버틸 힘을 얻는다.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일 뿐이라지만,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어떤 큰 힘을 얻기도 하나 보다. 나는 겨울 바다의 그 맹렬한 따뜻함을 품고 다시 돌아온다. 언제라도 눈을 감으면 파도의 메아리가 들리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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