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은 Jan 23. 2024

#42 점심 일탈, 비밀스러운 행복

 직장인이 출근해서 퇴근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탈은 무엇이 있을까. 머릿속에서 작은 일탈들이 떠오르지만, 오늘은 ‘점심 일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조금 외딴곳에 있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강, 논, 밭 등등 자연 밖에 없다. 주변에 식당도 없어서 점심을 먹으려면 차로 10분 이상은 가야 한다. 그 동네에서 그나마 괜찮은 맛집을 한 10군데 정도 찾아냈다. 그 메뉴를 번갈아 가면서 먹어도 점점 질려갔다. 그런데 어떤 날은 메뉴보다도 그냥 점심을 먹지 않고 쉬거나 혼자서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점심시간이라는 보장된 내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보내고 싶은 마음. 대부분의 직장인은 공감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내 점심 일탈은 작년에 친구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친구가 먼저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식당은 회사에서 13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다. 가능할 것 같았다. 효율적인 점심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친구가 먼저 주문하고 기다리면 내가 도착해서 먹기로 했다.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이었다. 운전하는 내내 몸이 방실방실 떴다. 점심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고기 냄새가 날까 걱정되면서도 입은 부지런히 고기를 먹고 있었다. 잠깐 회사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너무 즐거웠다. 점심 일탈은 주말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소풍 간 것 같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한 점심 일탈은 하루를 내내 즐겁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소소한 나만의 일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 제법 낭만적이었다.    

  


 


오늘도 점심 일탈을 하고 돌아왔다. 내 일탈을 위해서 식당을 찾고, 먼저 가서 주문해 주는 친구가 있어서 모두 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나보다 더 먼 거리를 와야 하는데 기꺼이 먼저 제안해 준다. 그 고마운 마음을 냉큼 받아 또 방실거리며 식당으로 갔다. 조용한 시골 동네에 있는 곳이었다. 정겨운 느낌과 다르게 수제버거를 파는 곳. 동화 같았다. 한적한 가게에서 해가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주어진 시간은 겨우 30분밖에 없는데도 세상 그런 여유가 없었다. 햇살, 맛있는 음식, 따뜻한 차, 그리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 그 조화로운 30분이 내 숨통을 트이게 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작은 일탈을 도와줄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내가 점심에 어디를 다녀왔는지, 특별히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괜히 비밀스럽고 그래서 더 즐겁다. 내가 오늘 얼마나 분위기 좋은 곳에서 수제 햄버거를 먹고 왔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 별것 아닌 거 같아 보이는 작고 비밀스러운 일이 잠들기 전까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