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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Jan 21. 2024

# 41 마중과 배웅

 본가를 떠난 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1시간 반 정도면 그리 멀지도 않은데 자주 발걸음을 하기가 어렵다. 하고 싶은 것에 비해 주말은 한 달에 4번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집에 가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가족의 생일이 있거나, 명절이거나, 그 외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가 아니고서야 ‘집에 갔다 와야지.’하는 마음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불효녀의 핑계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새해에 몸이 아파 본가에 가지 못했다. 그게 내도록 마음에 걸려서 1월 중순이 다된 지금에서야 본가를 다녀왔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전하다가 집에 도착하기 한 20분 전이면 아빠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디쯤이고?” “이제 한 20분 남았어요~” 그렇게 간단한 통화가 끝나고 동네에 들어서면 아빠 모습이 보인다. 뒷짐을 지고 산책하듯이 무심하게 나를 마중 나오는 우리 아빠. 밤에 도착하면 주차 자리를 봐주기도 하고, 짐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 무심함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꽤 오랜 시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본가에 있고, 동생이 타지에 나갔던 적이 있었다. 동생이 집에 오는 날이 되면 도착 시간에 맞춰서 창밖을 그렇게 내다보던 아빠가 기억난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방충망까지 열면서 동생이 오는지 안 오는지 목을 빼고 내다보곤 했다. 그러면 엄마랑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때 되면 올 텐데 뭘 저렇게 기다리나 몰라~”하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야 그 마중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오래전부터 그건 사랑이었다.     


 요즘은 회사에 도시락을 싸다녀서 엄마에게 반찬을 부탁했다. 멸치볶음, 숙주나물, 연근조림, 톳나물, 어묵볶음까지 한가득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반찬 좀 줄까 물어보면 잘 안 먹는다고 거절하기 일쑤였다. 후에 독서모임을 참석했을 때 엄마 또래의 회원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났다. 부모는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지는 게 속상해진다는 것이었다. 반찬도 그런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집에 가서 다 못 먹고 버리는 게 아까워서 그랬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서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중에야 할 수 있었다. 이번에 엄마가 부엌에서 반찬을 만들 때 “우와~ 완전 맛있는 냄새난다. 너~~무 맛있겠다.”라고 했더니 엄마가 “별거 아닌데 뭐 그렇게 맛있겠다고 난리고~”하는데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가 그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어쩌면 반찬을 해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반찬이 가득 담긴 가방을 들고 환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따뜻했다. 너무 익숙해서, 사소해서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뒤늦게 하나씩 발견하는 느낌이 든다. 마중과 배웅 그 속에는 아주 많은 사랑이 담겨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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