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은 Jan 25. 2024

#43 소개팅보다 더 중요한 것

 소개팅. 이제는 설렘보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단어가 되었다. 안 그래도 낯가리는 성격에다 말수도 적은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해야 하는 건 나에게 다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어떤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없다고 생각을 하면 소개팅도 하나의 좋은 기회다.    

  

 우연히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너무 갑작스럽긴 했지만,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일지도 모르니 우선 승낙했다. 그리고 1분 만에 바로 후회가 되었다. ‘지금 내가 누굴 만날 수 있는 상황인가? 지금 이렇게 살이 쪄서 누가 좋아하기나 할까? 이상한 사람이 나오면 어떡하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고작 소개팅 하나 때문에 나를 깎아내리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자, 미리 마음 다칠 걱정은 하지 말자.      


 퇴근 후 저녁 7시, 조용한 카페에서 소개팅이 시작되었다. 예상한 대로 어색한 분위기가 1시간 넘게 지속되었다. 나는 어떤 주제로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참 막막했다. 더군다나 2:2 소개팅이었다. 차라리 1:1이었다면 더 편했을까 싶지만 아마 비슷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럴 만도 한 게 나는 사실 소개팅이라는 것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자만추를 추구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다. 대화와 대화 사이의 어색한 공백이 계속되었다. 소개팅 가기 전 필독서 같은 게 있었다면 미리 읽어보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페퍼민트 티는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다행인 건 내 잔만 그런 건 아니었다. 다들 이 상황이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조금 새어 나왔다. 대화를 하다 보니 소개팅에서 으레 하는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취미가 무엇인지, 이상형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식당이 있는지 등등... 이런 주제들은 늘 나에게는 단번에 대답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음... 그러게요.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네요..” 내가 제일 잘 알아야 하는 내용을 자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다.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았다.     


 소개팅을 떠나서 사람을 만날 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지나온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좋아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보이는 묘한 반짝임이 사람을 이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충분히 그런 사람이 된 줄 알았다.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만의 기준, 나의 선, 나만의 매력 같은 것들을 알아가면서 더 반짝거리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전보다 더 나와 잘 맞는, 더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소개팅에 갔다가 자기 성찰을 하고 왔다는 건 웃긴 이야기지만, 소개팅보다 더 중요한 숙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꽤 괜찮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42 점심 일탈, 비밀스러운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