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은 Feb 25. 2024

#52 보름에 대한 이야기

 가끔 엄마의 미션을 받을 때가 있다. 주로 생일에 먹어야 하는 음식들을 미션으로 받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어제, 엄마에게서 미션 문자가 왔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니 다른 건 못 챙겨 먹더라도 약밥이라도 하나 사서 먹어라.' 정월 대보름이건 뭐건 뭘 챙겨 먹어야 하는 건 다 허허식이고 미신이라고 믿던 시간이 길었다. 그런데 요즘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마트를 쓱 둘러보는 내가 되었다. 결국 약밥은 찾지 못했고, 엄마가 준 미션을 성공하지는 못했다. 찜찜한 마음이 남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마트를 한 번 돌았던 성의로 나쁜 기운들이 떨쳐졌기를 바랐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오늘을 돌아보다 잠깐 눈물이 날 뻔했다. 언젠가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오늘 같은 보름달이 뜬 날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군가의 안녕을 빌어주는 틈에서 엄마의 미션들이 그리워하게 될 순간들. 그 기억을 더듬어 살게 될 날들.


 보름이 하루 지난 오늘, 늦었지만 엄마의 오랜 안녕을 빌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51 꿈속에는 진짜 내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