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쉰다. 자연스러운 들숨과 날숨의 반복이 일상을 무탈하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 중요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다 숨이 답답해질 때, 당연했던 숨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숨이 답답한 걸 못 참았다. 목욕탕에 가도 누구보다 빨리 답답함을 느끼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는 것도 힘들었다. 코감기에 걸리면 죽을 맛이었고, 찜질방은 분위기 때문에 갔다. 특히 뜨거운 곳에 들어가면 숨이 턱 막혔다. 그때는 숨을 쉬어도 온전히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숨이 폐까지 차지 않고 목젖에서 걸리는 느낌이랄까.
이럴 때는 작게나마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 마라톤을 마치고 찜질방에 갔었다. 보통 찜질방에 가면 맥반석 달걀이랑 식혜나 먹으며 수다 떠는 재미로 갔는데, 그날은 예외였다. 살기 위해서 몸을 지져야 했다. 일단 가장 온도가 낮은 황토방으로 갔다. 나름대로 따뜻하니 좋았지만, 5분을 버티기 힘들었다. 혼자였다면 금방 포기했겠지만, 열정적인 친구들과 함께여서 조금 더 뜨거운 소금방으로 향했다. 제법 몸이 피곤했는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진작 답답함을 느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선잠이 살짝 들었을 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찰나에 들어오는 찬 공기가 얼마나 반가운지. 그다음부터는 문 여는 소리만 들려도 눈앞에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늘 숨 쉴 구멍은 내가 찾는 것이었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가고, 이불을 걷어차고, 코를 풀고. 모두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는데 아닐 수도 있다니. 혼자서만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다.
사람이 살면서 숨 쉴 구멍 하나쯤은 필요하다. 불확실한 삶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확실한 행복이라든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안락할 수 있는 공간이라든지, 사람이라든지. 그게 어떤 형태든지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숨 쉴 구멍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너무 깊숙이 가라앉아서 떠오를 힘조차 없을 때, 방문을 향해 손을 뻗어도 도무지 잡히지 않을 때, 아무리 소리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 그런 때가 오면 그냥 다른 사람의 손을, 목소리를 빌려 다시 숨 쉴 구멍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뭐든 혼자서만 헤쳐나가야 한다는 마음만 덜어내면 생각보다 문은 쉽게 열릴 수도 있다. 찜질방 문을 열고 드나드는 사람들 덕분에 숨 쉴 구멍을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