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은 우연한 행복

by 은제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모를 허름한 집. 그 대문 너머에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바로 옆, 옆집이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 곳인데 5년 만에 처음 발견했다. 종종 대문 안을 들여다본 적은 있다. 그럴 때마다 잡초가 무성한 것만 봤지, 이렇게 큰 라일락 나무는 없었다. 왜 이제서야 눈에 띈 걸까. 어쨌든 익숙한 출근길에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오늘 하루가 보랏빛 행복으로 만개했다.


익숙한 봄꽃들과는 다르게 은은한 보라빛을 내는 커다란 나무. 우연히 발견했지만, 도무지 검색하지 않고서는 지나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때 '라일락 나무가 이렇구나'라는 걸 알았고, 마침 '라일락'이라는 노래가 흥행하던 때였다. 마치 청춘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듯한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초여름의 주말, 바람은 살짝 불고 느릿하게 걸으며 행복을 만끽했던 날이었다.


그날의 기분과 오늘의 기분이 합쳐져 라일락 화분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가까이 두고 보면 더 좋지 않을까해서. 그런데 한참을 찾아보다가 마음이 바뀌었다. 라일락은 우연히 발견해야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더 큰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든 너무 가까이 두고 보면 익숙해져버리니까. 그런 것들을 굳이 늘릴 필요는 없었다. 익숙해져서 소중하지 않아진 것들이, 흥미를 잃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한철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다면, 기꺼이 노력해서 누리고 싶다. 꽃도 한철이지만, 지금의 나도 한철이기 때문에. 오늘처럼 우연히 라일락 나무를 발견하면 함박웃음을 짓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진을 보내고. 올해의 라일락을 잘 간직했다가 내년에도 잘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연한 행복이 철마다 가득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숨 쉴 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