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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갯짓 Nov 03. 2024

잔소리 먹고 갈래?

초등삼형제 워킹맘의 아침전투기


내가 이렇게 말이 많은 줄 몰랐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아직도 안 일어났냐.
빨리 밥 먹어라. 양치했냐. 양치 안 하면 친구들이 싫어한다. 숙제 챙겼냐. 왜 어제 입었던 옷 또 입었냐. 세탁기에 있던 옷을 왜 꺼냈냐.  물병 넣었냐.

세명이니 똑같은 말을 세 번 할 때도 있다.

7시 40분부터 8시 20분까지 내 모든 걸 다 태워버리는 시간. 보이는 것들마다 온통 빈구멍. 내 잔소리로 퍼즐조각이 채워질 리 만무하지만 나는 완벽한  아침을 꿈꾸듯 쉬질 않고 지적의 잔소리를 쏟아낸다.

그 와중에 깔끔쟁이 남편은 애들 머리 거의 감기는 수준으로 물 흠뻑 묻혀 빗질해 주고 드라이까지 마쳐야 한다.


'아니, 사내 녀석이 머리 좀 뻗치면 어때서. 그 시간에 다른 걸 챙기면 어디가 덧나나'


속으로 구시렁대던 나는 결국 큰소리를 낸다.


아침부터 잔소리 먹고 학교가야 직성이 풀리냐


'먹고' 앞에 '처'를 찰떡같이 딱 붙여 넣고 싶지만 차마 입에 담지는 못한다. 아이들 지나가는 곳곳마다 자석을 따르는 철가루처럼 내 잔소리가 따라다닌다.



보태면 보탰지, 절대 그냥 넘어갈 리 없는 1학년 막내아이가 갑자기 발을 쿵쿵 구른다.


오카리나가 없어졌어. 내 오카리나 어딨어!
으앙
나 학교 안 가.


올게 왔구나. 며칠 전엔 다리 아파 못 걷는다고 난리법석이어서 초음파, MRI 다 찍었는데 결국 성장통, 처방은 부루펜 진통제였다. 의사 선생님도 웃으며 '한번 일어나 걸어봐' 하지만 녀석은 휠체어에서 절대 한걸음도 안 뗀다. 사진 찍을 때 소리 지르며 우는 거 보니 꾀병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그런 일이 있었던지 이제 겨우 일주일인데 이게 또 무슨 일이야.


부랴부랴 아이 수업시간표를 살펴봐도 오늘 오카리나 수업을 할 것 같진 않다. 분명 다음시간에 가져오라고 얘기한 걸 다음날로 착각한 것 같은데 말이 통하질 않는다. 아이의 머릿속엔 온통 오카리나로 가득할 뿐.


아까 갖고 돌아다니더니 대체 어디에 놓은 거야? 우선 학교에 가게 하는 것이 나의 목표니 달래고 또 달래 본다.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짹 각 짹 각 짹 각


8시와 8시 20분 사이, 압축적으로 고통이 밀려오고 있는데 느릿하게 다정한 말들을 건네는 애들 아빠마저 쬐려 보게 되고 아이들을 다그치게 된다.


나도 출근해야 한다고
나도 늦으면 혼난다고


심장은 이미 제속도를 따라잡고자 열을 올리는 기관차. 쿵쾅쿵쾅.


혈액형 AA에 MBTI 초초초 I인 나는 가끔 나의 엄청난 고함소리와 끊이지 않는 잔소리가 나 자신조차도 쪼그라들게 만드는 것 같다. 이미 난 밟혀버린 개똥이다.


가까스로 달래고 달래서 형아들 편에 등교시키고 나니 나의 아침과 너의 아침을 망친 똥멍청이 애물단지 오카리나를 실컷 두들겨 패고 싶다.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는 순간


오카리나
오카리나
오카리.... 나 /


있는 힘껏 소리치는데 '오카리나'가 리듬을 타며 3옥타브까지 오른다. 아이유? 내 목소리가 이 정도까지 올라간다고?  가슴이 락스품은 변기처럼 뻥 뚫린다.




무사히 사무실 책상에 앉았다. 이제야 잔잔한 마음이 찾아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보다 아이들은 금세 크고 나는 좋아질 거야. 내게 강 같은 평화가 올 거야. 숨을 크게 내쉰다. 하지만 이제 겨우 화요일이고 이제 겨우 아침 9시를 지나고 있다. 월화수목금과 하루를 이미 다 써버린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 조곤조곤 힘 있는 목소리가 옆자리에서 들려온다.

'아직 안 일어났어? 빨리 일어나서 학교가야지'
끊고 나서 한숨소리와 함께 '못살아'

고등학생 아들을 둔 팀장님의 목소리다.


이 또한 다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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