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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Jun 15. 2022

미래를 묻지 마세요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컴온 컴온>을 관람하고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제목이 마음에 걸렸다. <컴온 컴온>. 도대체 제목을 왜 이렇게 정한 거야?라고 생각했다. 너무 단순하고 가벼운 제목. 그런데 원제 역시 <C'mom C'mom>.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몹시 궁금했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 영화에 관해 접한 정보라곤 주인공이 호아킨 피닉스라는 것, 그리고 그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9살 조카를 돌보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영화관에 도착해 접한 정보는 포스터에 쓰인 문구 딱 한 줄이었다. "조커보다 더 독한 조카를 만났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이 문장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영화 <조커>의 히어로 호아킨 피닉스를 의식한 문장이었을 테지만 조커를 갖다 붙이기엔 조카가 너무 해맑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있는 조니(호아킨 피닉스 분)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의 직업은 라디오 저널리스트. 그가 아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미래에 관한 것들이다. 지구의 환경은 어떻게 변할까, 미래의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가족의 모습은 어떤 형태로 변화할까와 같은 것. 조니와 그의 조력자들은 여러 도시를 방문해 그곳의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대답을 녹음기에 담아내는 일상을 이어나간다. 마치 인류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는 강박증을 드러내듯이.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여동생이 연락을 해온다.  


조니는 몇 해 전 사랑하는 노모를 잃었고 여동생(가비 호프만 분)과는 사이가 멀어진 상태다. 여동생과 사이가 소원해진 이유는 병든 노모를 돌보는 방식으로 충돌이 잦았기 때문이다. 조니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친절했고 여동생은 그렇지 못했다. 잠시 잠깐 곁을 지키는 그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온전한 사랑과 기대를 추억하게 하는 존재였지만 내내 곁을 지키는 여동생에게 어머니는 고단함과 외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 여동생이 오빠를 찾은 것이다. 남편의 건강 악화로 집을 비우는 동안 자신의 아들 제시(우디 노먼 분)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그렇게 시작된 조카와의 동행. 이후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기까지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와 별다르지 않은 풍경을 그린다. 아이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양육자와 그로 인해 상처받고 갈등이 증폭되는 두 사람의 일상. 익숙함 탓인지 영화가 납작하다고 느낄 무렵 영화는 전환을 맞는다. 제시가 즐겨하는 '고아'라는 상상놀이에 조시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의 불화 속에서도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이해하려 애썼던 9살 아이의 이야기. 그제야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영화의 제목이 왜 <컴온 컴온>인지도.


영화를 번역한 황석희 번역가는 원제 <C'mom C'mom>을 '해봐 해봐'라는 말로 영화에 녹여냈다. 삼촌이 녹음한 아이들의 대답을 들으며 '해봐 해봐'라고 외치는 제시. 제시의 외침은 자꾸만 미래에 대해서만 질문하는 어른들에게 그만 질문하라는 외침처럼 들린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 미래는 결코 상상대로 전개되지 않는 것.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미래라는 시간에 대해 왜 자꾸만 질문을 반복하느냐는 외침. 그냥 해. 해보라고. 미래를 상상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해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보호받고 사랑받았는다는 충족감과 원하는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추동력이다. 그 추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책임'이라는 단어를 아이들 입을 통해 듣게 되었을 때 무책임한 어른들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아이들의 삶이 떠올랐다. 어리석게도 9살 아이에게도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제시의 고아 놀이를 보며 알게 되었다. 어른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아이들이 상상하는 미래가 아니라 아이들이 지나온 과거와 지나고 있는 현재라는 사실도.


미래는 아이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히 웅변한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상상하게 하지 말라. 아이들의 미래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였고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 따라 저절로 꾸려질 것이라고, 그러므로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 건 아이들의 몫이 아니라 어른의 몫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끝나고 화면이 완전히 멈추는 그 순간까지 녹음기에 담긴 아이들의 목소리를 관람객에게 들려준다. 어찌 보면 상투적이고 원론적이기까지 한 수많은 답변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친절한 몸짓과 말투, 책임 있는 행동과 말, 가족 간의 평화... 어른이라는 사실이 몹시도 부끄러워지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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