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면 풍선처럼 마음이 부풀어 오르다가도 이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마음이 쪼그라들고는 한다.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한 것도 결핍이지만 사랑을 온전히 주지 못한 것도 결핍이어서 자꾸만 그런 시간들이 떠오른다. 작고 여린 아이에게 일관되게 '스스로'를 강요했던 엄마, 아이의 불편함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편함을 토로하던 철없는 엄마가 떠올라 민망함으로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언제나 나의 대답은 아이들에게 외로움을 주었을지도 모를 그 시간에 태어나서 다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올해, 첫째는 내가 결혼할 때의 나이가 되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언제 세월이 이리도 흘렀나 종종 믿기지 않는다. 세월의 무심함이야 진즉에 알아챈 일이지만 그 속에서도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면 아이들로 인해 충만했던 나의 시간만큼 아이들의 시간도 그랬기를 바라는 그것뿐이다. 그래서일까. 막내가 건네준 건 연필 두 자루였지만 내가 건네받은 건 위로였다. 막내의 기억 한 자락에도 엄마의 연필이 있구나 하는.
막내는 영상 속 그림을 따라 그리기 전에 선긋기부터 연습하라며 백지와 스케치 관련 책을 내밀었다. 식탁 위에 백지를 펴고 선을 쓱쓱 그렸다. 선이 곧지 못하고 구불하다. 막내는 손의 움직임을 보더니 손목은 움직이지 말고 팔 전체를 움직여 선을 그리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막내의 조언대로 선을 그렸다. 속도도 일정하고 선도 한결 곧아졌다. 막내와 마주보며 씩- 웃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것보다 가르침을 받을 게 훨씬 많은 나이가 되었다. 그 사실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