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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Apr 05. 2024

서른 즈음? 예순 즈음!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서른이 지나서야 처음 들었다. 서른이 지난 나이였지만 김광석의 노래는 그다지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 아이 둘을 키우고 동네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며 하루하루를 바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아이 둘을 데리고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니고, 수업을 하는 아이들에게 읽힐 책을 고르고 계획을 짜느라 과거를 되돌아볼 시간도 미래를 걱정할 시간도 없었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하루가 멀어져 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가 넘치는 에너지로 다가왔다.


그렇게 삼십 대가 저물고 마흔 즈음이 다가왔다. 마흔 즈음은 막내의 탄생과 함께 사십 대를 다시 삼십 대 시절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첫째, 둘째와는 또 다른 시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낳아 놓으면 스스로 알아서 크는 거라고 생각했던 양육관에 커다란 변화가 온 것이다.


막내는 첫째, 둘째와 달리 흥이 많았다. 어디서든 음악이 나오면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리고 물을 너무 좋아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야외 수영장에서 튜브 위로 머리와 다리를 내놓고 누워서는 머리 뒤로 손을 돌려 깍지를 끼고 눈을 감은 채 싱긋이 미소를 띠고 햇살을 즐기던 모습을.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이는 사랑스러운 존재구나. 부모는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지켜주고 북돋아주는 사람이구나. 커다란 자각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비로소 나는 다정한 엄마가 되었다.


쉰 즈음은 새로운 생활을 도모해야 하는 시기였다. 직장생활을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막내가 초등학교 졸업하면 그때부터는 내가 책임질게!"라고 호언장담했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막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정말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나는 뱉은 말이 있어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즈음 KSAM(한국표준협회미디어)에서 교정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내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서류 전형에 합격하고 실무 테스트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실무 테스트는 A4 용지 석 장 분량의 KS 표준서에서 오탈자를 찾아내고 그림과 본문의 지시어를 일치시키는 작업이었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문제지를 받아들고 당황했다. '표준서'라는 양식을 처음 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문제지가 눈에 익기 시작했다.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KSAM과의 인연은 예순 즈음에 이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남편도 프리랜서로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벌이를 해왔다. 직장 맞벌이 부부에 비한다면 프리랜서 두 사람의 벌이는 한 사람의 몫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게 지옥 같다"던 남편의 외침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했다. 그런데 예순 즈음이 되자 또 다른 복병이 찾아왔다. 육신의 쇠락이 찾아든 것이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 작기만한 내 기억속엔 /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 조금씩 잊혀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 조금씩 잊혀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김광석, <서른 즈음에>)


예순 즈음에 이른 요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튼튼한 육신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어도 주름과 백발을 막을 길이 없다.


남편은 요즘 부쩍 옷을 입고 벗기가 힘들다고 푸념한다. 그러면서 '보약'이라는 개념에 무지한 아내에게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홍삼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보약'이라는 세계에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제는 관심을 가져야 하나 고민 중이다.


봄은 다시 돌아왔는데 어떤 요령을 부려도 육신의 청춘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나날이다. 서른 즈음이 아니라 예순 즈음에 이르러서야 청춘은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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