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교수의 <청춘의 노래들>을 듣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즐겨 듣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라디오를 듣지 않으며 자연스레 그 방송과도 인연이 끊기고 말았는데 지난주 유튜브에서 바로 그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만났다. 이름하여 <청춘의 노래들>.
<청춘의 노래들>은 배철수가 여름휴가를 가는 동안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간대에 특별히 마련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되었는데 2023년도 일일디제이는 박태환, 김경욱(소설가가 아니라 개그맨이다), 이지선, 이국종, 모니카였고, 올해는 박세리, 김창옥, 정재승, 김해숙, 손석희였다.
알고리즘 때문에 뜬 건지 알 수 없는 영상에서 손석희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음악을 가장 먼저 들었다(https://www.youtube.com/live/3_kscf_NuCk?si=DMRoroY8bfSQdvaw). 그는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자신에게 인상 깊었던 곡들을 들려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글스의 <데스페라도>였다(https://youtu.be/FiPqUjLMuA8?si=SD3tDkQGmJOuBy-F). 손석희는 이 곡을 취준생을 위로하는 곡으로 선정했는데 정작 가사는 방탕한 삶을 일삼는 데스페라도를 훈계하는 내용이어서 '위로'와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멜로디는 위로가 되고도 남았다. 여운이 강해서 하루 종일 멜로디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제는 '이글스' 하면 <호텔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데스페라도>가 가장 먼저 떠오르겠다.
오늘은 정재승 교수와 만났다. 오늘은 음악보다 입담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감상부였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친구들과 팝에 관해 나누었다는 쓸데없는 잡담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수다'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과학자가 살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과학이 재미있어요? 일 것이다. 재밌다고 하면 바로 이런 질문이 따라붙는다. 어렵진 않나요? 물론 어렵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쉬운 분야가 아니다. 과학자인 내게도 그렇다. 그런데 어려운 것들을 이해하려고 힘들게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 과정을 '경이롭다'는 말로 표현한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혼자만 알고 있기가 아깝다. 그래서 자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고 나누고 싶어진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칼 세이건, 리처드 파이만, 리처드 도킨스 같은 세계적인 물리학자, 생물학자들이 자신이 우주와 생명에 대해 발견한 사실을 최대한 쉽게 책으로 써서 세상과 나누었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아주 많은 것들을 새로 알게 되었고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인간의 뇌를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과학에 관한 책을 쓰고 시민들에게 강연을 한다. 뇌라는 작고 복잡한 세계를 침묵 속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세상과 마주한 채 기꺼이 수다스러워진다. 이것은 내가 과학의 경이로움을 세상과 나누는 과학자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분들이 인간과 자연, 우주와 생명의 경이로움을 나처럼 맛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 인류가 진보한 순간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그 순간이 아니라 이해한 순간이라고 믿는다. 그러기에 과학이 세상 밖으로 나와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과학자의 강연이 마치 가수의 콘서트처럼 사랑받는 세상을 꿈꾼다. 오늘도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심코 라디오를 틀었다가 뇌과학자가 라디오에 나왔네, 음악과 함께 뇌과학을 이야기하네, 그냥 이런 생각들을 슬쩍슬쩍 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과학과 여러분의 사이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아주 행복한 저녁이 될 거 같다."
'경이'를 바탕으로 한 '수다'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방송을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떠는 수다에도 그런 경이가 담겼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live/plHzW201EWE?si=DGcrnYMXb2hH9X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