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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Aug 21. 2021

삶의 여정을 돌아보는 시간

종로홍보관 취업 도전이 내게 남긴 것

친구와의 약속으로 방문한 광화문. 점심을 먹기 위해 고층 빌딩 식당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창 밖으로 한옥 건물 하나가 눈에 들었다. 기와지붕 주변으로 너른 마당과 잘 가꾼 화단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뭐지? 궁금증에 식사를 마치고 친구와 그곳으로 나들이에 나섰다.


'종로홍보관'. 현판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피맛길을 지나다니며 공원을 본 듯도 한데 아마도 그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건물인 것 같았다. 지킴이에게 물어보니 2년 남짓 되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홍보관이어서인지 실내에서는 종로구와 관련한 영상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영상미가 어찌나 세련되고 우아하던지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재주꾼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실내를 둘러보니 도란도란 담소를 나눠도 좋을 테이블 두엇과 지킴이 뒤로 자리한 아담한 책장이 눈길을 끈다. 홍보관이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면 전통찻집이라 해도 좋을 풍경이다. 게다가 빌딩 숲 한가운데에서 마주한 대들보와 서까래라니... 멋스러움에 감탄이 절로 났다. 이런 곳을 지키는 이에게 슬쩍 부러움이 일었다.   


정원에는 각종 채소가 가지런하게 심겨 있다. 과일나무도 드문드문 보였는데 가수 이용의 노래 가사를 새긴 비석과 함께 자리한 사과나무가 퍽 인상 깊었다. 사과나무에는 열매도 몇 알 맺혔다. 돌의자마다 심어놓은 작은 꽃도 앙증맞고 예뻤다. 나지막한 담장도 정겨움을 더했다. 친구와 처마 아래 앉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빌딩이나 가게로 들어가지 않고는 앉을 곳이 마땅치 않은 청진동에서 잠시 쉬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로의 사랑방. 종로홍보관에 나름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집에 돌아와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고 종로홍보관을 검색했다. 마땅히 참고할 만한 관련 자료가 없다. 궁리를 하다 종로구청을 검색했다. 그런데... 화면에 종로홍보관 지킴이 모집 공고가  떠 있다. 오잉? 궁금한 마음에 채용공고를 클릭해 자세한 내용을 살폈다. 6개월 동안 종로홍보관을 지킬 기간제 근로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계약이 6개월마다 연장이 가능한 걸 보니 지난번 홍보관에서 보았던 분이 그만두든지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동했다. 내용을 다시 찬찬히 살폈다. 아침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주 5일 근무. 월급은 월 160만 원 남짓. 출퇴근 시간과 교통비, 점심값고려하니 월급이 너무 박하다. 돈을 생각하면  지원이 망설여지는 자리였다. 하지만 하루 동안 그곳에서 마주할 일들을 떠올리니 구미가 당겼다. 상상 속 풍경은 근사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채용공고를 접하게 된 상황마저 각별하게 느껴졌다. 6개월 정도 시간을 내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홍보관 주변의 풍경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원서를 쓰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설렜다.


1차는 서류전형. 작성해야 할 필수 서류는 모두 4장이었다. 응시원서, 이력서, 자기소개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관한 동의서. 우선 이력서부터 작성했다. 이력서에서 요구하는 항목은 모두 5개 영역. 개인 신상, 학력, 경력사항, 자격증, 직무 이해 및 응시 동기. 경력사항은 경력증명서를 제출할 수 있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어 직장 경력도 프리랜서 경력도 쓸 수 없었다. 결국 학력란만 메꿨다. 다음으로 응시 동기와 직무 이해. 응시 동기는 별다르게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아 홍보관을 방문한 일, 운명처럼 채용공고를 접하게 된 일들을 가감 없이 작성했다. 그리고 직무 이해에 대해서는 아이들과 어려서부터 즐겨 다녔던 종로구 명소와 참여한 행사들을 언급하며 그것을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제 자기소개서가 남았다. 자기소개서를 앞에 놓고는 조금 난감한 기분에 젖었다. 단 한 번도 자기소개서를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혼 전 취업 당시만 해도 이력서와 면접만으로 직장을 구했고, 결혼 이후 기관 소속 외주자 모집에 응시했을 때에도 이력서와 직능 시험을 거쳤을 뿐 자기소개서를 제출하지는 않았다. 어째야 하나 싶었다. 나를 소개해야 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그러다 둘째가 대학 수시전형을 준비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자료집을 뒤졌다. 아들이 골몰하며 쓰던 방식을 참고해 가닥을 잡았고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최대한 에너지 넘치게. 그리고 최대한 나라는 사람이 잘 드러나게. 나름 좋은 평가를 얻었던 자기소개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올해 53세. 세 아이를 키우느라 경력란에 쓸 수 있는 이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생활이 전무한 것은 아닙니다. 경력증명서를 뗄 수는 없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단행본 출판사에서 1년, 월간 잡지사에서 4년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책을 기획하고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일을 했습니다. 잡지사에서는 취재기자로 활동했습니다. 협회 산하 잡지사여서 주로 관련 업계와 방송 관련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직장은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간간이 원고를 썼습니다.

아이 셋을 낳고 키우느라 직장생활은 못하게 되었지만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의외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을 다시 살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아이들과 더불어 공부하고 더불어 자랐습니다. 박물관이며 미술관을 다니고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책도 만드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정성’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되었고, 긍정의 힘에 대해서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나날이었습니다.

학부모가 된 이후로는 학교와 봉사단체에서 주로 일을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책 읽어주는 엄마’와 도서 회장을 역임하며 활동을 이끌었고, 봉사단체에서는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을 배달하고,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도서를 녹음하는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소설 제목입니다.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인간은 다른 이가 베푸는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시지프의 신화’.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제목입니다. 카뮈는 말합니다. 인간은 행복한 시지프여야 한다고. 산꼭대기로 밀어 올린 바위가 끊임없이 다시 굴러 떨어지더라도 바위를 밀어 올릴 때마다 마주하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떠야 한다고 말입니다.

세상만사에 ‘측은지심’을 가지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새로운 풍경을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은 톨스토이와 카뮈가 제게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그 교훈을 새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한 번 흘러간 강물에 다시 손을 담글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지금 이 순간 ‘오늘’에 집중하며 말입니다.


관련 이력도 하나 없으면서 덜컥 서류를 접수했다. 1차는 8배 수로 뽑는다니 8명 안에 들면 연락이 올 것이었다. 우편으로는 서류를 접수받지 않아 종로구청을 방문했다. 태어나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시골 인심이 물씬 묻어나는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의 구청이었다. 담당자에게 서류를 건네는데 왜 그리도 마음이 두근거리던지... 마치 낯선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여행자처럼 설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며칠 후 서류심사에 통과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면접 번호는 7번. 면접 시간은 오후 2시. 막상 합격자 통보를 받고 나니 이번에는 면접은 어떻게 보는 건가 싶었다. 이 역시 둘째의 경험을 참고했다. 면접은 서류를 검증하는 것이니 따로 준비할 만한 게 없을 듯했다. 이제는 면접에 입고 갈 옷만 정하면 될 것 같았다. 캐주얼복으로 가득한 옷장에서 정장 느낌에 가장 가까운 재킷을 골랐다.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면접 당일, 전철을 타고 종로구청으로 향하는데 무언가 허전했다. 구직난 시대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닌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지원동기, 운영계획 외에 무언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철 안에서 부랴부랴 종로구청과 관련한 내용을 검색했다. 종로구청의 연혁과 상징물,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 행사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 내용들을 훑다 보니 전철은 금세 종각역에 닿았다.


면접장에는 지원자들이 모두 와 있지는 않았다. 안내를 받아 면접실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40대로 보이는 점잖은 이가 면접실 문을 열고 나왔다. 면접 시간은 지원자마다 다른 모양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듯 일렬로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이 아니었다. 잠시 후 호명을 받아 면접장에 들었다. 면접실에는 4명의 심사관이 앉아 있었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 맨 오른쪽 남자를 빼고는 모두 중년 이상의 나이로 보였다.


4명의 면접관은 돌아가며 질문을 했다. 자소서가 인상 깊다는 덕담을 시작으로 종로구의 상징 마스코트, 대표적인 행사, 홍보관 운영 계획, 업무 외 일처리에 대한 생각 등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몇몇은 막힘없이, 몇몇은 진땀을 흘리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질문은 민원을 어떻게 처리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오랫동안 민원자의 입장이었으므로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며 최대한 해결해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 대답은 지금 와 생각하면 썩 좋은 답변은 아니었던 듯하다. 종로구에서는 민원인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종로구의 입장을 대변해 중재자 역할을 기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이 마지막 질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생각보다 면접 시간이 꽤 길었다는 느낌만 남았다. 그리고 오늘날 구직자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직장을 구하게 되는지를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던 기억만 남았다. 버벅대었던 몇몇 답변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마음이 쓰였지만 내가 할 일은 끝났고 당락에 대한 결정은 심사관들의 몫이므로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예상에 없던 구직활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합격자 발표날.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예비합격자라는 안내문이었다. 예비합격자라는 생소한 단어에 종로구청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최종합격자는 8번. 면접실을 나오며 마주친 젊은 지원자였다. 그 아래 내 이름이 있었다. 첨부된 안내를 보니 예비합격자는 최종합격자가 임용을 포기하거나 결격사유가 발생했을 시 대체 가능한 인력이었다. 어쨌든 결과는 차석. 좋은 경험을 쌓을 기회를 놓쳐 아쉬웠지만 차석도 기대 밖 선전이어서 만족스러웠다.   


종로홍보관과 관련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 후 자기소개서를 찬찬히 다시 읽었다. 마음이 이상했다.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독신의 여자는 사라지고 무한 긍정을 장착한 아낙이 거기에 있었다. 그곳에 그려진 내가 낯설면서도 마음 한구석을 뭉클하게 했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가슴이 뻐근했다. 목숨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구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삶의 여정을 돌아보는 시간. 종로홍보관 취업 도전은 내게 그런 시간을 선물했다.




이야기는 2018년의 일입니다. 오십 넘어 경력과는 전혀 무관한 직종에 무모하게 도전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무슨 일이든 도전한 경험은 시야를 넓히고 마음을 풍성하게 하니까요. 삶은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정해져 있는 여행길입니다. 그 여행길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걸어가려 합니다. 다가오는 무수한 풍경과 인연과 사건에서, 잃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는 얻은 것에 눈을 맞추고 지혜를 쌓아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오늘이 그런 날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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