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직장에 다닌다. 덕분에 따릉이(서울시 공공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하지만 비 오는 날에는 자전거를 탈 수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런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회사로 단번에 가는 교통편이 없어 출근시간이 서너 배는 늘어난다. 자전거로는 15분 남짓이면 가능한 거리가 40분 넘게 걸리는 거리로 돌변하는 것이다.
둘째가 여섯 살이던 해 11월 막내를 낳았다. 다시 시작된 육아로 정신이 없던 그때, 둘째는 혼자 유치원을 다녔다. 함께 다니던 누나가 초등학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손을 흔드는 엄마를 보며 둘째는 홀로 유치원 차에 올랐다. 1년 후 둘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첫째와 둘째는 알아서 집을 나서고 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는 엄마 대신 누나와 함께 등교했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도 오지 않은 교실에 제일 먼저 들어서기를 즐겼던 누나가 너무 일찍 집을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 눈을 뜨기가 괴로웠던 둘째는 결국 홀로 집을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막내를 들춰 업고라도 그 길에 함께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씩씩'이라는 말로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했던 것 같아 몹시도 부끄럽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엄마라기보다 양육자에 가까웠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랬다. 세 아이를 키우는 것에 급급해서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하교 시간이 다 되어서 비가 오는 날에도, 어린 막내를 핑계로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 아이들을 마중 나가는 옆집 엄마에게 우산을 들려 보냈다. 한 번은 우산을 전해받지 못해 전화를 걸어온 아들에게 친구와 함께 쓰고 오라 일렀다. 이후 아들은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았다. 초등 4학년 시절, 엄마에게 서운했던 일을 말해보라는 내게 아들은 비 오는 날 이야기를 꺼내며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심드렁하게 뱉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아들에게 가장 먼저 외로움을 안겨준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우산 하나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쳤던 그날 이후 나는 엄마가 되었다.
어쭙잖지만 엄마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난 뒤 아이가 우산을 잊고 가거나 느닷없이 비가 오는 날이면, 부지런히 우산을 들고 학교 앞으로 마중을 나갔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아이들은 더 이상 엄마의 우산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비를 맞아도 상관없을 나이이기도 했고, 다 커서 챙김을 받는다는 게 민망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정작 원할 때는 우산을 씌워주지 않은 엄마와 원하지 않을 때는 우산을 들고 나타나는 엄마의 간극은 지금 생각해도 웃픈 풍경이다.
비 오는 날이면 아들의 출근길에 함께 나선다. 회사 앞까지 바래다주기 위해서이다. 물론 자동차로. 아들을 태우고 빗속을 나아갈 때면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우리의 존재가 신기해서 새삼 주변을 둘러보곤 한다. 비가 오건 비가 오지 않건 아이들이 요청할 때면 언제든 흔쾌히 운전대를 잡는다. 운전대는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들에게 내미는 나만의 우산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머리 위로 우산을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