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제 Jan 05. 2018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이 느린 드라마가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

오늘은 제가 요즘 유일하게 열심히 챙겨보고 있는 드라마를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주 익사이팅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시청률이 좋은 드라마도 아닙니다. 그냥 삶에 대해서 보잘것없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구질구질한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고 '사랑'만이 구원이라고 말하는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사진출처 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시작하기 전 서정적인 분위기를 마구 풍기는 포스터를 보고 이 드라마를 기대작으로 뽑았다. 이때 다른 사람들은 주인공들이 너무 약하지 않느냐 너무 잔잔한 스토리일 것 같지 않느냐고 말했다.


요즘은 1화에서 거의 시청률이 판가름 난다. 대게 전개가 매우 빠르고 그로 인한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냥 보통의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보다는 특별한 사람들 그러니까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판타지적 인물들의 등장이 잦다. 장르물이 여전히 인기다.


맞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높은 시청률을 낼 수 있는 조건들이 많이 없었다. 그러나 수익을 내야 하는 제작자의 입장이 아닌 시청자의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JTBC에서는 3년 만에 부활시킨 월화극 첫 번째 주자로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택했다. 아마도 다른 방송사였다면 편성이 힘들 수 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쇼핑몰(에스몰) 붕괴 사고 이후 생존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확히 말하면 사고 이후 상처를 입고 그저 견디며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연스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다. 아직 이야기 하기 예민하고 어려운 일들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렇겠지만. 걱정도 됐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드라마를 자극적이지 않게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이러한 우려를 밀어 두고 천천히 상처를 보듬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펼쳐갔다.


이러다 보니 한 3, 4화까지는 한 시간짜리 드라마를 보고 나면 두세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까지 들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요즘 시청자들을 끌어당기기는 힘든 드라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냥 단순히 재미없다.라고 말해버리고 끝나는 드라마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그렇게만 치부해버리고 놓치고 싶지는 않다. 윤보라 작가가 만들어낸 상처 가득한 유약한 그러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때문이기도 하다.


사진출처 JTBC

먼저 이준호가 맡은 이강두는 사고로 아버지와 멀쩡하던 다리를 비롯해 모든 것을 잃었다. 이후 항상 얼굴에 상처가 있는 돈이 되는 일이면 아무거나 다 하는 뒷골목 인생 잡부다. 드라마 속 표현처럼 비 맞은 똥강아지 마냥 사연 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동네 양아치 같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따듯한 심성을 숨기지는 못한다. 사고 이후 함께 있던 피해자의 환청과 환영 때문에 괴로워 한다. 단 하루도 그 날을 잊은 적이 없다.


사진출처 JTBC

원진아가 맡은 하문수는 사고로 동생을 잃었다. 자신이 동생을 챙기지 못해 동생이 죽었다고 죄책감을 갖고 살고 딸을 잃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망가진 엄마를 보살피며 산다. 아무런 욕심 없이 그저 씩씩한 척 괜찮은 척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상처는 미처 돌보지 못하며.


이런 둘이 만나 서로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과거를 이야기하고 감정을 토해내며 의지하게 된다.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주변에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붕괴된 쇼핑몰 건축 설계사의 아들이자 문수의 키다리 아저씨 서주원(이기우), 강두의 채권자이면서 친구인 불법 약장수 할멈(나문희), 누구보다 맑은 영혼의 소유자 상만(김강현), 강두가 길에 버려져 있으면 언제나 다시 주워오는 마리(윤세아), 문수와 함께 병원에서의 시간을 버틴 친구 완진(박희본), 메마른 눈빛을 하고 있지만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따듯한 우유를 내어주는 문수의 아빠 동철(안내상)이 있다.


악역은 없다. 청유 건설의 이사 정유택(태인호)이 사람을 막대하고 돈 이야기에 항상 예민하게 반응하며 악을 쓰긴 하긴 하나 재벌가에서 남들의 기대감에만 부응하며 살아가기 급급하며 속은 자라지 못한 알고 보면 제일 아이 같은 속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마리밖에 없는 불쌍한 인물이다.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내보이며 그 상처를 서로가 보듬고 치유해나간다. 이 드라마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그러나 역시 이런 세상에서 사람만이, 사랑만이 유일한 치유제라고 이야기 한다.

사진출처 JTBC

<김과장>을 통해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이준호는 겉은 거칠어 보이지만 속은 너무 여려서 문드러질대로 문드러진 강두에 그대로 녹아든 연기를 보여주고 신예 원진아는 담담한 얼굴과 아담한 체구에 너무나 커다란 상처를 숨기고 있는 문수를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연기해낸다.


그리고 부산에서 촬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산의 달동네들과 바다, 오래된 상가들 등 여러 풍광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16부작 방영 예정이며 1월 2일 기준 8화까지 방영했다. 빠르고 눈길을 끌만한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지금 잊지 않겠다고 말한 그 사람들이 문뜩 떠오른다면, 상처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치유하고 싶다면 매주 월, 화  11시 JTBC에서 방영하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찾기를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엔딩크레딧으로 보여준 엄정화라는 존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