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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화장할 때 사실 마음은 반반이었다
그냥 출근해서 일을 할까, 아님 그동안 못 쉬었으니 아는 사람도 있겠다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생각도 정리하고 겨울바다도 보고 올까.
항상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는 엄마께 마지막으로 여쭤봤다.
'나 진짜 갈까?'라는 물음에 '가,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것도 보고 생각도 정리하고
마음을 비워야 담을 수 있어, 비우고 또 비우고 와'
따뜻한 우리 엄마의 말 한마디에 난 씩씩하게 문을 닫고 나왔다.
그렇지만 문제가 생겼다
앞서 말했듯 난 계획성이 없는터라 문을 나서서 표를 찾은 것이다.
서울역도 보고
용산역도 봤지만 시간대가 마땅치 않았다
그것도 민속 최대의 명절인 설날임을 망각한 채로 바로 가서 끊으면 되겠거니 방심했다.
하지만 찾고 또 찾아보니 마지막으로 본 광명역에 마땅한 시간대를 찾았고
급히 택시를 타고 광명역으로 갔다.
명절이지만 그리 사람이 많지 않던 광명 기차역.
표를 끊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표를 찍었다.
그리곤 그 남자에게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조금 있다 봐요'
그 남잔 오분도 안돼 연달아 답장이 왔다.
'대박' '대박' '거짓말' '진짜와 요?' '뭐야 이 여자' '아니' '아니 근데' '진짜와 요?'
이 반응이 너무 재밌어 또 혼자 연실 웃었다.
'진짜 가요'라고 답장을 보냈고 이내 그 남잔
'나 부산 아닌데' '진주야' '표 끊어야겠네'
그러했다.
난 이십 몇 년 토박이 서울 사람으로서 진주랑 부산은 가까우니
서울과 경기도처럼 지하철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도착해서 연락할게요' 보낸 뒤 두 시간 반을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있었다.
무식해도 너무 무식했던 내 착각에
이 남자는 내가 부산으로 내려가는 동안 진주에서 부산 가는 버스를 겨우 끊고
씻고 준비하고 밀리고 밀린다는 차를 뚫고 와야 했던 것이다.
두근두근-
부산역 앞
누구나 그렇듯 부산역을 한번 찍고 그 남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남자는 차가 너무 밀려 서면역에서 만나자며 문자가 왔다.
그 남자의 고생을 까마득히 모르고 싱글벙글 서면역에서 기다렸다.
멀리서 낯익은 오대오 머리를 연실 쓸어 넘기며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난 그때까지도 그 남자가 그리 고생해서 왔을 줄은 몰랐다.
보자마자 '이 여자 무섭네' '뭐야' '아니' '어떻게 내려 올 생각을 했어'
아까 문자와 똑같은 말을 반복했고 난 의기양양하게 날 어디로 안내할 거냐며 보챘다.
그 남잔 '보자 보자 어디가야하노' '어디 가고 싶어요' '아니다 뭐 무 글라요'
내가 한 마디 하면 두세 마디씩 물어보던 그 남잔 일단 나갑시다
하며 지하도 밖으로 나갔다.
적어도 사람의 인연 안에서는 갑자기 란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다.
왜 씨도 없고 뿌리도 없던 마음이 급히 열매를 맺어버릴까.
어쩌면, 항상 오밀조밀하게 씨도 있고 뿌리도 내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치만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어떠한 영양분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여놓았던 건 아닐까.
그래서 조금만 방심하면 그동안 들어오지 못해 안달 난 감정들이
온갖 의미부여를 하며 쏟아지는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