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리듬을 탄탄히 다져 자신만의 큰 리듬대로 살아가는 법
그냥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눈치보지 않고 자신만의 룰을 만들어 실행해가는 사람들이요. 그들의 삶을 얼핏 보면 ‘자기 좋은 일만 하고 사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선례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기본기를 다지며 살고 있습니다. 또한, 남의 것이 아닌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거침없이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했죠. 제조도 감 농장에서는 그들을 ‘리듬감’ 좋은 사람들이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Q. 지난 인터뷰 때, 주변의 영향을 잘 안 받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오늘은 자신만의 룰을 만들고 그대로 실행하는 힘인 <리듬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워라밸' 이라는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과 삶을 분리해서 살고 싶어 하잖아요. 예지님은 좀 다르게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A. 네. 저는 워라블 인생이라고 표현해요. Work 랑 life가 blend 되어있다는 뜻이거든요. 저한테는 일이랑 삶이 따로 떼어지는 개념이 아니에요. 저는 사실 취미도 일을 더 잘 하기 위해서 시도해보는 활동 정도로 생각하거든요. 칼럼이나 글을 읽는 것도 내가 일을 잘 하려고 하는 거고, 뭘 배우는 거도 다 일을 위한거고요.
Q. 삶이랑 일이 거의 동의어네요.
A. 저한테는 그래요. 저는 일을 모든 놀이의 요소들이 집합 되어 있는 종합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 인간관계도 있고 취미도 있고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도 있고 반복되는 일도 적당히 있잖아요.
그리고 사람이라는 동물이 성취감과 성장에서 쾌감을 굉장히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중독성도 엄청나고요. ‘해냈다’는 느낌이 진짜 재밌지 않나요? 근데 그러면서 돈도 벌어. 너무 좋은거죠.
Q. 확실히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 이랑은 좀 다르네요. 보통은 일을 생각하면 회사를 떠올리고, 취업해서 연차 쌓고 결혼하고 가정꾸려 사는 걸 일반적인 삶의 모습으로 생각하니까요.
A. 저도 그런 고민을 깊이 했을 때가 있었어요. 예전에 제가 원했던 좋은 회사에서 일했을 때 자아 정체성에 큰 혼란이 왔던 적이 있거든요. '내가 공모전을 엄청 재밌게 해서 1등도 하고 인턴도 하고 그러고 있는데, 공모전을 좋아했던 나니까 칸 광고제에 가서 상을 받으면 행복할까?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그런 고민을 엄청 했어요.
주변 사람들한테도 매일 물어보면서 치열하게 고민했어서 그런지 지금도 그 때 반응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요. 지금에서야 '퇴사 후의 삶'이나 '나 다움'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지만 그때 당시에는 '열정! 열정!' 하던 시절이라 다른 분들도 저한테 뭐 다른 삶의 대안을 고민해 주거나 공감을 해 주지를 못했어요. 그냥 다들 '배가 불렀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우선 회사에서 경험을 쌓아보고 이야기해라.' 그랬죠. 그렇게 별 소득 없이 회사를 다니다가 홧김에 쓴 시가 있는데요.
이 시로부터 시작된 <잼있는인생>을 창업하면서 이제 저의 새로운 리듬이 시작 된 거죠.
Q. <잼있는인생>이 지금의 제조도의 시초잖아요. 예지님의 첫 브랜드인 <잼있는인생>의 창업 과정은 어땠나요?
A. 위에서 보여드린 그 시를 보고 잼으로 창업을 하고 싶다는 친구가 나타났어요. 저는 사실 창업까지는 생각하지도 않았어서 친구에게도 ‘창업이 아니라 프로젝트처럼 해보면 어떠냐’고 했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잼은 식품이니까, 일반적으로 잼으로 창업을 한다고 하면 그 잼을 어떻게 만들지 제일 먼저 고민하잖아요. 근데 저는 브랜드 콘셉 먼저 잡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언젠가 병원 가서 링거를 맞는데, ‘처방’이라는 콘셉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때부터 팍팍한 인생을 사느라 지친 현대인들에게 잼을 처방해준다는 콘셉을 확실히 하고 나머지 것들을 풀어 나가기 시작했어요. 잼 병은 일반 병이 아니라 플라스크나 비커 모습의 병을 썼고, 약사 가운을 입고 잼을 판매하기도 했고요.
잼을 사러 온 분들에게 노잼 진단을 하고 처방잼을 드리기도 했죠. 그 컨셉은 아직도 유효해서 지금 제조도에있는 잼있는인생으로 오시면 노잼 진단 테스트도 할 수 있고, 각각의 노잼 유형마다 맞는 유잼 인터뷰를 처방해주려고 하고 있답니다.
애초에 잼있는인생이라는 브랜드를 만들면서 제가 했던 생각은, ‘재미’라는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너무 평가 절하된 가치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하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배가 불렀다는 피드백을 듣기 쉽잖아요.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라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꼭 나오거든요. 요즘 성공한 덕후들도 재미에서 원동력을 얻어 업으로 이어져 성공한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재미있게 살자.'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고요.
Q. 브랜딩이 너무 잘 되어서 그런지, <잼있는인생>은 잼을 파는 곳인데도 다른 식품 제조 브랜드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A. 잘 하는 일 하자, 제가 이 말을 정말 많이 하거든요. 잼있는인생도 마찬가지로 제가 제조업을 엄청 파고들어서 해보니까 저한테 맞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잘하는 건 기획이고 브랜딩이구나. 그러니까 나도 잘하는 거 하자. 물론 처음에는 잼 제조에 완전 몰입해서 쏟아부었었어요.
그 때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첫 식품 제조장을 얻은지 얼마 안되고 겨울이 되었는데요. 식품 제조장에서 덜덜 떨면서 잼을 제조하는 게 정말 쉽지가 않더라고요. 분명 뜨거운 불 앞에서 계속해서 잼을 젓고 있는데, 히터가 없어서 달달 떨면서 잼을 만들었어요. 잼을 젓는 손도 얼고 옷도 두 세 겹씩 껴입고 핫팩을 붙이고 있었어요. 거기다 온수기가 없어서 얼음 물에 설거지를 하고 나면 ‘이렇게 요단강을 건너는구나’ 그런 생각도 했고요. 새로운 제조장으로 이사를 갔는데 거기도 환경은 비슷했어요. 주문은 감사하게도 계속 들어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창업 초기 멤버였던 친구들도 퇴사를 하게 되고 혼자 남았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 때 몸이 너무 망가졌어요. 그만큼 할 수 있었던 게 함께 했기 때문이었구나 생각해볼 수도 있었고요.
그러다 정부 지원 사업 관련해서 농가랑 계약 맺고 공장 생산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매출 생각하면 직접 제조를 하는 게 맞긴 한데, 저는 이제 잼 제조가 저한테 노잼이라는 걸 알아서 직접 제조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거죠. 물론 해야만 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창업을 하고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꼭 ‘해야만 하는 힘든 일’을 해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된거네요.
A. 네. 제 리듬감은 그 때 미친 듯이 익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의 일들이 지금 제가 일하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고 있죠. 회사를 운영하는데도 굉장히 많은 안 보이는 일들이 많잖아요. 예를 들어 부가세, 기타소득세, 사업소득세 등 각양각색의 세금신고와 국가지원금 관련해서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 계약과 관련된 행정 업무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려면 그런 일들을 꼭 해내야만 하거든요. 하루 24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회사 친구들도 매일 “아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가! 이해가 안가네!” 이러고 있고요.
Q. 그래서 회사에 살고 계시잖아요. 실제로 ‘살고’ 있다는 게 너무 재밌어요. 그 선택을 한 이유를 들려주실래요?
A. 저는 원래 게으른 사람이거든요. 근데 제가 대표인데, 대표가 게으르면 안되잖아요. 예전에 일할 때 출퇴근을 했었는데, 그 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더라고요. 나는 일이 너무 좋고 재미있는데 집에 가면 아무것도 못 하겠는 거예요. 저는 삶에서 우선순위가 제일 중요한데, 진짜 눈 감기 전까지 일하고 눈 뜨자마자 일하는 게 가장 행복한 사람인데… 그래서 최적화 된 환경을 세팅하다보니 회사에서 지내게 된 거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준비 시간이나 딜레이 되는 시간들을 줄였다는 것 만으로도 제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회사에서 잔다고 하면 대부분 너무 일 외의 삶이 없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답을 하자면, 저도 그런 만족감을 일 외적인 곳에서 찾아보려고 많이 노력해봤거든요. 근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 모임도 나가보고 여행도 다녀봤는데… 별로더라고요! 저는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너무 즐거워요.
Q. 그런 것 같아요. 예지님을 보면 이렇게 살아가는 게 정말 행복해 보여요.
A. 너무 행복하고요. 하루 하루의 만족감이 너무 커요.
Q. 정말 신기해서 물어보는 건데… 하루 24시간 중에 자는 시간 빼고 거의 모든 시간을 일하는 건데, 그 와중에 꼬박 꼬박 운동도 챙기시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으세요?
A. 운동을 빠지지 못하게 환경적인 장치를 만들어두면 돼요. 필라테스를 사무실 바로 아래 층에서 한다거나, 운동하라고 재촉하는 사람을 만들어두는 그런 장치요. 요즘에는 아래층에서 사업하는 다른 친구랑 워킹클럽을 만들어서 주에 2번 씩 걷기 운동을 하다 와요. 이왕 하는거 제대로 하고 싶어서 트래커도 만들고 티셔츠도 맞추고 굿즈도 만들었어요. 귀엽죠?
그리고, 제가 아무리 바빠도 운동을 빠지지 않는 이유가 머릿속이 리프레시가 될 때가 많아서 그런데요. 고민이 있어도 운동하면 정신이 다시 맑아져요.
Q. 방금 이야기했던 체력관리나, 하루 하루의 업무 처리같은 작은 리듬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팁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해요.
A. 사실 해야하는 일이니까 그냥 하는 게 크죠. 그래도 이야기를 해보자면...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것 같아요. '와 이 머리 아픈 세금신고를 해내다니. 나 너무 대단하다.' 이런 식으로요.
일 하다보면 그런 친구들이 있어요. 아직 뒷산도 못 올라가 봤는데 에베레스트 정복 하고싶어하는 친구들요. 다들 등반하다 죽고싶은 건가..?
아무튼, 그러다보니 일을 할 때 계속 결핍 상태인 거예요. 대단한 걸 해냈는데도 목표치가 너무 높다 보니 그거에 만족을 안 해요. 그런데 이상을 이루려면 현실은 냉정하게 봐야 하거든요. 만약 높은 목표치가 있다면 그걸 이루기까지 미친 듯이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하잖아요. 그러면서 결핍 때문에 행복해하지 못하고요. 그 결핍을 채우려고 그만큼 노력할 게 아니면 왜 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네 뒷산 걷기 위해 산책하는 나를 칭찬하고, 그 다음엔 뒷산으로 출발하는 스스로를 칭찬하라는 소리죠. 저는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거든요. 스스로 칭찬을 엄청 해주면서 인정을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종종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슬퍼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남에게 인정을 기대한다는게, 다시 말하면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는 소리잖아요? 스스로 해주면 되잖아요 그럼. 남의 칭찬보다 내가 하는 칭찬이 더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작은 거라도 스스로 인정을 계속 해주면 남의 인정에 휘둘리지 않을 거예요. 저희 회사 친구들도 다 너무 잘하는 친구들인데 칭찬 알러지가 있어요. 제가 '잘했다~' 하면 '아니에요~' 이러고. 제가 그거 낫게 해주겠다고 그랬어요.
Q. 그럼 예지님이 스스로에게 칭찬하는 상황 중에서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언제인가요?
A. 제 직감이 맞았을 때요.
Q.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