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겠냐고 엄마가 말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라고 나는 대답했다.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말이나 못 하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나는 다시 알바몬을 down하고 이곳저곳을 욱신대면서 기웃거리는 신세다. 당연히 마음에 드는 일은 없다. 내가 마음을 줘야 하는 일들 뿐이다. 노오력이 필요한 시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도 노오력이 필요한데 하고 싶지 않은 일이야 오주욱할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면 나는 어떻게든 마음을 주려고 노력해 본다. 그렇게 마음을 계속해서 주다 보면 더 이상 줄게 없어 메말라 버리는 때가 오는데 그럴 때면 나는 다시금 채워 넣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아무 이유 없이도 가긴 하지만). 영화를 보며 마음을 다시 채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채워지는 어떤 포인트가 있다. 비슷한 생활수준을 영위하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혹은 더 비참한 상황들의 영화들이 그렇지만 사실은 어떤 영화든 크게 상관이 없다. 보고 난 후 혹평을 쏟아 내게 되는 영화라도 그렇다.
'영화관의 어둠에 잠겨 수천만 번째 태초의 빛이 스크린에 떨어지길 숨죽여 기다릴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살아보기를 결심하고 있다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 영화의 아무런 기대가 없을 때조차.'
김혜리 기자의 책(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서문에 쓰인 글인데 나는 이 글에 많이 공감한다(스크린에 떨어지길 기다리는 순간은 아니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중간중간 문득 속에서 '살고 싶어!'라고 외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극장에서 봤던 영화는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어떤 장면이나 인상 깊은 대사 때문이 아니고 그냥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는 것, 그 자체에서 오는 무언가가 있다.
'인간은 삶에 포함돼 있지 않을 때 그것의 전경을 조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이 유용하다.'
같은 책에 나온 말이다. 영화, 드라마, 책, 게임이 무슨 재미냐며 오직 스포츠만을 유영하는 내 친구가 내게 유용을 묻는다면 나는 그대로 저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이해받을 거란 기대는 안 하지만). 지치고 힘든 순간에. 마음을 맞추느라고 심신이 피로할 때면 그렇게 극장으로 향한다. 영화를 보면 나는 다시 살고 싶어 진다. 그렇게 무언가 뜨거운 것이 마음에 가득 채워지게 되고 나는 다시 주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요즘은 영화관을 자주 찾고 있지는 않은데 아마 다른 곳에서 많이 받고 있기에.
나에게 마음을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나도 마음을 주고 싶다는 것. 주기 위해선 일단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 단지 살아있기만 해선 안된다는 것. 주기 위해선 모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움직이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너무 가벼워선 안된다는 것. 너무 무거워서도. 상대방과 무게를 맞추는 것. 무게를 나눠지는 것. 준만큼 받고 받은 만큼 줘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채 균형을 지키는 것. 그렇게 같이 걸어가는 것.
아무튼 일단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거나 말거나 일단은 살아야 한다는 것.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