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간

일기

by 기묭

집으로 돌아왔다. 돈이 없어 그래 일을 하기 위해서. 다시 제자리, 나는 떠났을 때와 얼마나 다른가. 돌아오기 전 친구의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돌아와서도 들었다. 나는 덜어내고 싶어 그날 엄마에게 이야기했고 이야기하다 보니 나의 아픔도 이야기했다. 엄마는 인정해주지 않았고 나는 서운했지만 상처 받지는 않았다. 이젠 엄마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다.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려온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다. 사려니 숲길 안, 화장실 옆 샛길로 깊숙이 들어가면 버섯농장이 나온다. 나는 거기서 일하고 있다. 나는 돌아오기 전 두 가지를 간과했다. 이렇게 보고 싶을지 몰랐다는 것 하나. 내가 변해도 이곳은 그대로라는 것 둘.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한다면 주관적인 지표이기에 설명할 수 없겠다. 친구의 아프다는 이야기가 그랬고 나는 친구와 객관적 힘듦과 주관적 힘듦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끝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시작을 꿈꿨다. 끝을 이야기하는 이 앞에서 감히 시작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고 그저 가만히 들어줄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앓음 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일했다. 먹고는 살아야 했기에. 최근에 들어 친구는 조금씩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밥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먹기 싫어도 일단은 먹어야, 기운이 있어야 꿈을 꿀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지배당하고 있는데 무엇에 그렇게. 기쁨의 감정보다 고통의 감정이 더 강하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을 반복해서 곱씹게 된다고 들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연상만 시켜주어도 생생하게 되살아 나는 점이 그렇겠지. 언뜻 생각해보면 복잡하고 위험해 보일 수 있는 일들이지만 어느덧 몇 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그리고 보통은 비슷한 일이기 때문에. 이제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그것에 지배당하는 시간이 많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곱씹는 것. 씹고 씹어도 단물은 빠지지가 않는다. 전과 같은가 싶으면 조금 다른 것이 지배당하는 와중에 가끔,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를 가지게 됐다는 것. 하늘을 올려다 보고 한숨 하나, 둘.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보고 고개를 내려 눈 앞의 풍경을 다시 볼 여유. 아직은 이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언젠가는 두 눈 부릅뜨고 벌어지는 일들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빠는 여전히 운전이 거칠다. 운전만 거칠다. 이점은 아빠에게만 다행이겠지. 같이 일하는 아저씨는 뒷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한다. 아빠는 여전히 나를 부를 때 성을 붙인 채로 불렀고 이점은 나에게 다행이다. 나는 잠시 머물다 갈 생각이기 때문에. 알고 있지만 쉽지 않다.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 방을 계약하고 머물 때 누군가는 떠날 곳이기 때문에 그냥저냥 지내고, 누군가는 떠날 곳이라도 자기 취향대로 꾸며서 지낸다는 이야기. 후자가 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래 쉽지가 않다. 가족인 경우엔 더욱. 아직은 알아차린 상태로만 머물고 싶다. 소화시킬 것이 많아서 그렇다. 요즘 들어 입이 짧아진 것이 그런 연유이지 않을까. 뭐가 많다. 많아서 소화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더 자라려고 그러나 싶어 결국엔 긍정. 끝내 나는 긍정적인 사람인가 싶다. 운이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감사할 수밖에. 타자를 치는 손가락이 저리다. 검지 손가락에 멍이 들었다. 사촌 형의 집에 제사가 있던 날. 엄마는 마당을 뛰어다니는 개들 때문에 사람들이 맘 편히 길을 지나다니지 못할 거라며 핀잔을 주었다. 사촌 형은 처리할 수 없다고 했고 형은 긁어 부스럼이라며 엄마의 오지랖을 나무랐다.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며칠 후 사촌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사무소에 민원이 들어와 개들을 풀어놓지 말아라 했다고. 시간이 날 때 마당에 울타리를 쳐 달라고 했다. 시간이 날 때 아빠와 나는 울타리를 치러 사촌 형의 집으로 갔다. 조그만 울타리를 쳤고 개들을 잡으러 다녔다. 아빠는 뒷다리를 잡아 올렸고 개들은 오줌을 싸며 아프게 울었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찾으러 다니는 척 집 뒤로 숨었다. 한 마리만 남았을 때야 나는 아빠를 도와 개를 구석으로 몰았다. 나는 손을 내밀었고 구석에 물린 개는 내 손을 물었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 피는 나지 않았다. 피가 났으면 병원에 가야 했을까. 나는 어린 시절 기르던 개에게 허벅지를 물려 살점을 조금 뜯겼던 사촌 형의 아들을 떠올렸다. 물었던 개는 그날 이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 손가락의 멍은 빠지지 않았고 나는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집 개들을 쓰다듬어주지 않았다. 아장아장 마당을 걸어 다니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나는 떠나기 전 목줄이 채워지는 것까지 보고 갔다. 풀어놓고 기르다 아빠 차에 엄마 차에 형차에 치여 죽은 개들이 묻힌 자리엔 잡초가 무성하다. 오늘은 돌아가면 쓰다듬어줄 생각이다. 산책도 시켜야겠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나는 제자리에서 다시 시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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