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잠시 멈췄다. 세계(나의)가 변하길 바란다만 나만 잘하면 된다에는 동의했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있었다. 초점이 조금 어긋난 것 같은 느낌. 문장을 조금 바꿔보니 알겠다. 나한테 잘하자. 타인에게 신경 쓰는 만큼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나의 말이나 행동이 상처가 되진 않을까 뒤돌아 걱정하면서 나에겐 왜 그러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압력을 가하는걸 되도록이면 삼가면서 나는 왜 매일 나에게 압력을 가할까. 밀어붙일까. 먼저 나한테 잘하자.
나를 좀 더 명확히 알기. 나의 동기를.
나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모르는 건 안 해봤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딱 집어 만화라기보다는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고 싶은 것 같다. 그래서, 구체적이지 않아서 어디에다 집중해야 할지를 모르고 흩어지는 것 같다. 이러다 그냥 흩어지고 말겠지 라는 불안이 그나마 한 점으로 집중하도록 나를 미는 것 같다. 뭐든 일단 해봐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테니까. 하나씩 해봐야 아닌 걸 지워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깊은 이면엔 '뭐가 됐든'이라는 생각이 깊이 깔려있어서 나는 여전히 힘이 없어 무기력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무사한 채로 살아왔기에 외부로부터 느끼는 압력이나 어떤 필연적인 사건도 없다. 나를 미는 동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 동기를 찾기 위함을 동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끌리고 가능성이 보이는 게 있다면 그러나 동기가 없다면 동기를 찾기 위해서 그걸 하면 되지 않을까. 동기를 위한 동기.
또다시 말에 얽매인다. 말로 뱉는 순간 그것은 프레임이 되어 다시 나를 가두는 것 같다. 투정이다. 아주 긴 투정. 가끔은 그래 투정도 부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를 위해서.
'아프다, 싫다, 나쁘다, 아니다.' 표현 없이 살아온 나를 곁에서 지켜봐 왔던 내가 나에게 그럴 수는 없지 않을까. 나에게 내가 모질다. 리듬을 회복하기. 어르고 달래기. 뜨거운 열정, 차가운 열정이 아니라 따뜻한 열정으로. 무탈한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리듬인 것 같다. 특별함, 강렬함에 대해 품고 있는 선망을 내려두기. 내부에서 찾기. 내부에서 찾기 위해 움직이는 나를 어르고 달래기. 쉽지 않을 테니까. 힘들 테니까.
내가 나에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