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은 친할머니의 제삿날이었다. 아빠와 나는 아침 일찍 매일 가던 현장으로 향했고 형 또한 매일 가던 현장으로 향했다. 엄마는 제사 준비를 위해 다니는 요양원에 휴가를 내고 집에 있었다. 형은 오전에 일이 마무리가 되어 집에 일찍 들어가 음식 준비를 도왔다. 아빠와 나는 5시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형은 저녁 미사를 보러 성당으로 갔고 엄마는 국을 끓이고 있었다. 상은 아직 차리지 않은 채였다. 엄마는 빨리 들어와서 상을 차리라고 했고 아빠는 밭을 살피러 가선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보란 듯이 한껏 찡그린 얼굴로 병풍을 펴고 상을 닦았다. 엄마는 가서 아빠 보고 얼른 들어오라고 하라고 했고 나는 그때 손톱깎이를 찾고 있었다. 나는 손톱깎이의 존재를 물었고 엄마는 제삿날에는 손톱을 깎는 게 아니라고 했다. 입꼬리가 씰룩거리던 차에 차 소리가 들려 밖에 나가보니 작은 고모와 고모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 이 소식을 전했고 엄마는 다시 아빠를 불러오라고 내게 말했다. 고모부가 집에 들어와 인사를 건네고 엄마에게 언니라고 부르며 언니가 좋아하는 거 가져왔다며 옥수수가 가득 담겨있는 비닐봉지를 건넸다. 나는 엄마방에서 찾은 손톱깎이를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아빠와 고모가 밖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집 뒤로 돌아가 구석에 서서 손톱을 깎았다. 아빠와 고모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차가 한대 더 도착했고 큰고모와 고모부와 사촌 형이 차에서 내렸다. 아빠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들어왔고 엄마는 잔소리를 했다. 아빠는 표적이 되었고 다들 농담 어린 말들을 한 마디씩 했다. 아빠는 어제 심장이 멈추는 듯해서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고 했고 분위기는 바뀌어 다들 걱정 어린 말들을 한 마디씩 했다. 병과 약에 관한 말들이 오갔다. 아스피린이 어떻다고 큰 고모부가 물었고 간호사 일을 했던 작은 고모가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처음 듣는다고 했다. 아파도 얘기를 안 한다고 했고 아빠는 씻으러 들어갔다. 작은 고모가 접시에 음식을 담았고 사촌 형과 내가 상을 차렸다. 상을 차린 후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엄마가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냈고 작은 고모는 많이 담지 말라고 말하며 엄마 곁으로 갔다. 작은 고모는 김치를 접시에 담으면서 맛이 없어 보인다고 했고 엄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로 그래도 먹을만하다고 했다. 자기가 직접 담근 거라는 뒷말의 소리는 조금 작았다. 다 같이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비가 조금 내린다는 것을 어필하며 마당에 물건들을 창고에 들여놔야 한다는 이유로 도망쳤다. 집 앞 길가의 가로등 밑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다들 일어나려던 차였다. 나는 마당까지 나가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눈을 붙이는 것도 잠시 9시가 넘어가자 친척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기시감이 들었다. 같은 얼굴, 같은 대화. 나는 인사를 드리고 슬쩍 밖으로 나갔다. 엄마 차에 숨어 연인과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치고 차에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11시였는데 집에 들어가려고 보니 문전제를 지내고 있었다. 나는 문전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문전제가 끝나고 지체하지 않고 제를 지냈다. 제사가 끝나자 밥을 차렸다. 밥을 먹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도 먹고 싶지 않았다. 친척 할머니는 그래도 식갯밥은 먹어야 한다며 밥 한 사발을 내게 건넸다. 나는 티비를 등지고 밥을 먹고 있었는데 고개를 드니 모두가 티비를 보고 있었다. 다들 말없이 티비를 보며 밥을 먹었다. 나도 이따금씩 몸을 돌려 티비를 봤다. 엄마가 수박을 내왔고 다들 수박을 하나씩 손에 들고 티비를 봤다. 수박을 다 먹고 나자 다들 일어나 갈 채비를 했다. 나는 마당까지 나가 인사를 하고 들어와 설거지를 했다. 엄마는 너가 할 거냐?라고 물었고 나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뒷정리를 하다가 고마움인지 미안함인지 모를 감정을 짐짓 숨긴 채 서울 올라갈 돈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잘 구해보면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보증금이 얼마냐고 엄마는 물었고 나는 혹시 돈을 보태줄 생각인가 하는 기대는 짐짓 숨긴 채로 싸게 구하면 100만원 이하로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에 방을 구하러 올라가기 며칠 전인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이 말은 덧붙이지 말았어야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