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을 보는 걸 좋아한다. 직접 플레이 하진 않고 e스포츠 경기를 보는 걸 즐기는데. 노트북의 사양이 낮은 물리적인 문제와 함께 되도록 스스로가 플레이하는 것을 지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PC방은 가기 싫고 집에서 하기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여건이 된다 해도 종일 앉아서 게임을 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있다. 의지에게 문제를 일임하겠다는 말은 인간에겐 너무 아득한 말이다. 해서 여러 가지 요인의 결합으로 나는 게임을 (주로)보기만 한다. 어린 시절 <스타크래프트>가 유행할 땐 게임을 보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재작년 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이 게임하는 것을 보거나(인터넷 방송) e스포츠 - 나아가서 일반 스포츠 경기를 즐겨보는 행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2002 월드컵 때도 시큰둥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야구가 금메달을 땄을 때(고등학생 때 반 애들이 선생님 몰래 무음으로 티비를 틀어 뒀고 선생님은 짐짓 모르는 채하며 수업을 진행하셨다)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스포츠에 관심을 두지 않는 데에서 나의 개성을 확보하기도 했다. 남자애들의 보통은 스포츠를 좋아했고, 축구를 했으니까. 나는 보통, 남자애들을 싫어했기 때문에(남고였지만)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좋아했어도 티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 줄여서 '롤'의 존재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몇 번 플레이하기도 했다. 롤 e스포츠가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군대에서 맞선임이 항상 티비로 보고 있었으니까. 그땐 정말 짜증 났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페이커'라는 이름도 알고는 있었다. 축구를 모르는 사람이 '메시'라는 이름은 알듯이. 서론이 긴데 롤 e스포츠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나는 요즘 요가 학원에 다닌다. 이제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나고 있는데 하면서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서 적어둔다. 롤은 5명이 한 팀을 이루어 플레이한다. 탑, 정글, 미드, 원딜, 서폿. 보통 해설진이나 전문적으로 분석을 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 다섯 명의 선수가 골고루 캐리 능력(잘 이끌어 가는 능력)을 발휘할 때 그 팀은 시대의 강팀으로 남는다. 팀 내의 한 두 명이 주목받는 선수로서 경기를 리드하고 이끌어 가는 경우가 있는데 5명이 골고루 그런 능력을 갖추지 않는 한 한두 명의 선수에게 의존하는 팀은 반짝 빛나고 사그라들고 만다. 이 선수가 해줘야 한다, 이 선수의 어깨가 무겁다.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 팀의 경우 그 선수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상대팀이 전략적으로 그 선수만 파고든다면 이 팀은 쉽게 주저앉는다. 한 가지 패턴으로는 1년에 걸친 긴 리그에서 장기간 좋은 성적을 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다인 캐리를 많이 얘기한다. 여러 가지 패턴을 가질 수 있게 5명의 선수가 골고루 해줘야 한다고.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다. 5명이 뛰는데 5명이 다 잘하는 선수라면 당연히 강팀이겠지. 그래서 나는 롤 e스포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나는 요가 학원을 다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저 선생님의 자세만 따라가던 몇 주가 지나고 어느 정도 자세가 익숙해지자 정확한 자세를 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세를 취할 땐 무게중심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골고루 힘을 분배해야 하는데. 이때 어느 한 부위를 편하게 하자고 다른 부위에 의존하게 되면 균형을 잃고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다. 처음엔 덜 힘든, 익숙하게 사용하던 신체 부위에 부담을 주면서 이 순간만 넘기자는 생각에 많이 넘어갔다. 선생님께선 자신의 동작을 보고 따라 하지 말고 지시를 듣고 스스로 자기 몸을 보면서 느끼면서 동작을 이해해보라고 하셨다. 단순히 자세를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에 자극이 오는지 스스로 계속 확인해야 한다. 자세를 취할 때마다 손목이 자꾸만 말하는 것 같다. 같이 더불어 사는 몸인데 왜 나만 힘드냐고. 같이 사는 세상이다. 내가 편하면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다. 같이 쓰는 몸이다. 머리가 독재자로 군림한 채 부리는 몸이 아니다. 머리는 민주주의라 하는데 몸은 독재라고 느낀다. 항상 머리나 마음이 먼저고 몸은 뒷전이다. 몸이 먼저일 수 있을 때는 아플 때나 쾌락을 느낄 때뿐이다. 몸, 머리, 마음의 삼권분립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고 알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 공부를 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 연유는 추석 연휴 내내 집 밖을 한 번도 나가지 않고 종일 자서 찾아온 현타가 이유다. 적당히라는 게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