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가게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쉬운 길'의 '쉬운'이 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에 제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놓치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둘러 길게 돌아서 시작해봅니다. 최근에 몇 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제 안에선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 떠오른 생각을 붙잡고 한동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쉬운 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가게 하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이것이 떠오르도록 초래한 사건이란 사실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일상 속에서 흔히들 겪는 일이었어요. 일터에 나가 근무를 하던 도중이었습니다. 일을 하던 중에 '뭐,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일단 지금은 귀찮으니까 나중에 처리해야지. 뒤로 미룰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야 생기겠어?라고요. 그러나 여지없이, 언제나 미뤄두었던 일들은 조금 더 불어난 채 다시 제게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불어서 돌아온 일들에 당면할 때마다 생각하죠. 그때 할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많이 달라졌겠지만 필요한 과정이었겠지요. 그렇게 믿습니다. 이 책을 펴내게 된 것처럼요. 이 책은 제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틈틈이 써두었던 글들을 엮은 책입니다. 쉬운 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나오지 않았을 책이기에 책을 펴내는 이 순간만큼은 먼 길을 돌아온 것에 대한 긍정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조금 더 용기를 냈더라면. 당장 어려워 보이는 길이 사실은 가장 쉬운 길일 수 있다는 걸 과거에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똑같이 도망치겠지만요. 그래도 자신이 도망치고 있다는 걸 알면서 도망친다면 적어도 휩쓸려가진 않을 테니까요.
도망쳐도 괜찮아요. 도망쳐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다들 부디
무사히 도망치시기를.
책을 냈습니다.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진행하는 '나만의 책 만들기' 워크샵을 통해 그동안 브런치에 써두었던 글들을 추려 엮어내었습니다.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책은 스토리지북앤필름 온, 오프라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https://linktr.ee/storage
<잡문집>에 있는 글들만 추려내었습니다. 단어 몇 개가 바뀌었을 뿐 내용은 브런치와 같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제 글을 읽어와 주신 분들에게 이제와 감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떠올린 제목은 <투정집>이었습니다. 그렇게 읽혀도 좋겠습니다.
너는 농담을 진심처럼 하고 진심을 농담처럼 한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돌아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서 가는 길에 마주쳤던 것들과 무심코 뜯어버렸던 나뭇가지들을 주워다 이곳에 쌓아두었습니다. 별다른 계획 없이 쌓아두었던 것들이 책이 되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렇듯 책은 나무로 만들어지나 봅니다.
오며 가며 혹시나 마주치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 라는 안부를.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