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40여 일을 지내다 다시 서울의 원룸으로 돌아왔다. 나간 자리 그대로일텐데 보일러 온수 버튼이 눌려져 있다. 그랬던가? 분명히 다 확인하고 갔는데 기억이 다르다. 노트북에 꽂혀있던 마우스는 휠 버튼이 고장 나있다. 떠나기 전까진 잘만 돌아갔는데 돌아와 보니 작동하질 않는다. 냉장고에 반찬들은 당연하게도 썩어 문드러졌다. 변기의 물은 조금씩 증발해서 있던 자리에 자국 만을 남겨두고 쪼그라들었다. 오직 냉동고의 식재료들 만이 멀쩡해 보이는데 그런 식으로 밖에는 잡아둘 수가 없나 보다. 읽어야 할 책은 줄이고 돌아오려 했으나 오히려 배로 늘었다.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러고 보니 통장 잔고의 앞자리 숫자가 변했다. 숫자가 커진 만큼 여유도 늘었다. 덕분에 방심할 경우의 수도 늘었지만 이것은 의식하에 통제가 가능하겠다. 방청소를 하고 이렇게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자니 지난 40여 일간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이젠 이 공간이 나에겐 마땅한 곳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나만의 동굴. 아아, 그런데 월세를 내는 동굴이다. 관리비도 내야 한다. 우편함엔 청구서가 쌓여있었다. 나는 지역구 평균 사용량 대비 전기절약을 잘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부재함으로 하는 절약은 어쩐지 찝찝하기만 하다. 이곳의 부재는 본가에 기재되어 있을 텐데 말이다.
몸도 마음도 변했다. 떠난 이상 변하는 것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변하겠지만 지금 이렇게 여실히 느끼게 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기껏해야 40여 일, 그것도 1년에 수차례 방문하는 본가인데 말이다. 안에서 무언가가 변했는데 상세히 기술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변했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고 느낀다는 사실만을 적시할 수 있겠다. 어쩌면 글로 적을 때에 비로소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글로 적을 때만 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글로 적을 때에 비로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시작만으로 완결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됐는데 그래 이젠 어떻게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