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저장고에 타지 않는 쓰레기들이 가득해

by 기묭



겨울은 다가왔는데 타지 않는 쓰레기들이 가득하다. 봄은 여름으로 미뤘고 여름은 가을로 미뤘는데 여느 때와 달리 여름이 특히 짧아 겨울이 성큼 다가와버렸다. 부랴부랴 끌어 모으려 둘러보는데 주위엔 타지 않는 쓰레기들이 가득하다. 혹시나 싶어 모아는 뒀는데 역시나 타질 않는다. 타는 것들도 몇 개 찾긴 했는데 쉽게 얻어지는 것들이 그렇듯 금방 타버렸다. 나는 쉽게 타버린 것들과 타지 않은 채 그을린 것들의 잿더미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굳어있다. 추워서 굳어있기도 하거니와 약간의 움직임이라도 있게 되면 미세한 잿더미들이 퀴퀴한 먼지를 뿜으며 흩날리게 될 것이다. 기침을 하게 될 것이고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먼지는 더욱 흩날릴 것이다.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내가 볼 수도 없고 세상도 나를 볼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더욱 옴짝달싹 못한 채 비가 내리기 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먼지는 걷혀도 겨울비는 차가워 나는 끝내 얼어붙게 될 것이다. 비관적이긴 하나 짐작컨대 그리될 것이다. 시간을 들여 좋은 연료들을 구해두었어야 했다. 좋은 연료를 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필요한 시간을 들이기 위해선 인지한 즉시 몸을 움직였어야 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기엔 기억 속에 타지 않는 쓰레기들이 가득했기에 나는 작동하지 않았다. 소각장을 설치해서 쓰레기를 재활용해 새로운 연료로 만들었다면 작동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나는 소각장 설치를 반대했다. 그것은 나의 결정이 아니었는가. 무엇이 타고 무엇이 타지 않는 것인지 구별할 능력을 당시의 나는 갖추지 못했다. 뒤늦게 갖추게 되었을 때는 쓰레기산을 헤집고 다니며 선별을 해 나아갈 동력이 없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상황이 마지노선이었다는 걸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되었으니 결국 나는 한 번도 갖춘 적이 없는 것이다.

겨울비가 내리고 먼지는 걷혔다. 차가워 나는 끝내 얼어붙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 불을 피울 장작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나는 못 움직이는데 움직이고 있다. 나는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데 허겁지겁 뛰어다니고 있다. 타지 않는 쓰레기들이 가득한데 나는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니까 타지 않는 쓰레기들이 타고 있다. 잿더미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날 수 있다는 걸 나는 내가 아닌 곳에서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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