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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묭 Sep 19. 2021

오픈 키친



주방을 열었다. 이것을 여는 것은 내겐 숙명과도 같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열어봤더니 사실 실속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지만 그래.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겠지. 내겐 언제부턴가 이런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삶을 통제하고 싶다는 욕망. 외부환경은 어쩔 수 없으니 내 손 닿는 범위만이라도 통제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 그것은 가족들과 함께 사는 동안에 더욱 강해졌다. 의도와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나는 독립을 하게 되었고 서울로 이사를 왔다. 나는 내 삶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급한 대로 고시원에 들어갔고 그곳은 몇 가지를 포기한다면 굉장히 통제 가능하고 효율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그 몇 가지가 나를 좀먹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나는 나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었나.

나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우선순위로 둔다. 그리고 나머지 생활(사실은 이것이 중요하다). 나머지 생활에서의 고민을 줄이고 싶었다. 노량진에서의 삶은 정말 몇 가지를 포기한다면 이상적인 곳이다. 청소할 것도 없이 작은 방, 청소하지 않아도 되는 욕실, 먹을거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주변의 고시 뷔페식당들. 나는 생활의 우선순위를 돈과 시간 등의 효율로 매겼다. 우유나 물에 타 먹는 대체식품을 박스로 사서 먹을 때도 있었다. 한 끼를 가볍게 섭취하면서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면 이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안일한 생각. 원하는 욕망에 맞춰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게으르기 때문이다. 마음 한 켠에는 이렇게 쉬울 리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파고들려면 공부를 해야 할 것이기에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귀를 닫아두는 것이다. 당장의 부작용은 느끼지 못하기에. 그러나 그렇게 생활하던 차에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대체식이라던가 어떤 한 가지로 모든 잘못을 따지고 들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녀석은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주제에 어떤 문제들이 생겼을 때 듣고 싶은 것으로부터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지 밑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은 좀 더 문제가 커졌을 경우에 혹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지지부진한 생활을 살아내던 차에 알아차리게 된다. 굉장히 많은 생략이 되어있고 굉장히 두루뭉술한 이야기지만 이것들은 그래 결국엔 나의 패턴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꿈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만화가의 꿈을 가지고 있는데 그 꿈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다. 잠시나마 정면으로 마주하고 진중하게 대한채 만들어가는 과정을 밟다 보면 당연히 지루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오고 그럴 때마다 방식이나 어떤 다른 문제를 문제 삼아 모든 것을 미완으로 남겨둔 채 흐지부지 마무리하고 넘어간다. 원하든 원치 않든 집중해야 할 다른 문제들이 마침 자연스럽게 생기고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게 된다. 아르바이트로, 집으로(집이라고 해도 결국 일). 아, 여기는 주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나는 노량진 고시원에서 3개월가량을 보내다 그 몇 가지의 문제들로 결국 신림으로 이사를 갔다. 원룸은 그 몇 가지를 해소해주었다. 그래서 그 몇 가지는 무엇이었나. 창문, 방음, 주방 등등. 그러나 원룸으로 가서도 나는 아직 효율적인 측면에서 고시 뷔페를 다녔다. 그런 곳에서는 밖에서 먹는 식사가 오히려 저렴하다(물론 아직은 확실하게 모르지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다양한 부분까지 포함했을 때의 새롭게 매겨진 가격으로는 저렴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쉽게 가보자. 사실 시간을 더 뒤로 돌려야 하기에 쉽고 간결하게 가야 한다. 여기는 주방이다.

나는 요리라는 것에 적당한 관심(잘하면 좋을 거 같은데 그게 참)을 가지고 있었다. 24살에 대구에서 6개월간 자취를 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 나는 할 것이 없었기에 내일배움카드를 등록해서 요리를 배웠다. 거기서 3개월간 학원을 다니며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 학원에서 미리 세팅되어 있는 재료와 도구를 바탕으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내 손에서 맛있는 음식이 완성된다. 재밌다. 그러나 집에서 하면 다르다. 그 간극이 지속되니 학원을 수료하고 나서는 곧 흥미가 가셨다. 그러고 다시 본가에 기어들어가 아주 간간히 요리를 하며 지내다가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2년 정도는 외식으로 생활했다. 더 싸고 편하니까. 직접 해 먹어야 한다는 방향성만은 계속 품은 채.

그리고 고시원 > 원룸 > 셰어하우스를 거쳐 지금의 원룸으로 이사를 왔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집에서 밥을 지어먹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시작을 하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것은 아마도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지지부진한 생활을 살아내던 차에 알아차리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커다랗고 확실한 계기보다는 쌓아오던 시간의 특이점으로부터 나는. 나는 새로운 일을 구했고 돈을 아끼고 요리도 해볼 겸 도시락을 싸고 다니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멋있다,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주었고 내심 기분이 좋았다. 원하는 삶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출퇴근길에 책을 읽고 돌아와서 그림을 그린다. 나는 내 삶을 통제할 수 있었다. 당연히 아주 잠시뿐이지만.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연장근무가 잦아졌다. 퇴근하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지쳐 쓰러지거나 배달음식을 시켜먹게 된다. 잠자는 시간은 늦춰지고 일어나는 시간은 출근시간에 겨우 맞춰 일어나게 된다. 도시락은 요즘 안 싸오시나요? 라는 말을 듣고 초심을 잃었다고 웃으며 대답한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은 핑계이기도 하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1년 정도 일하고 퇴직금을 받고 나왔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일을 하지 않으며 만화를 그려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돈을 아껴야 했으니 가능한 집밥을 먹었다. 그런 생활을 6개월가량 이어갔다. 돈은 슬슬 줄었고 마음은 불안했다. 원하는 성과는 나오지 않았고 나는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원하던 것은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도 느꼈다. 주의를 돌려야 했고 나는 마침 돈을 벌어야 했다. 다시 일을 구했다. 1년간 다녔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고 지점만 다르고 비슷한 근무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 다시 도시락을 싸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근무는 지속되고 있다. 이번은 다르다! 라고 나는 외치고 있다. 다시 같은 환경을 맞이 하는 것이기에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뻔히 알고 있으니 이번엔 다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긴 하지만 의미가 없지 않다. 경험으로 누적되기 때문에.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일  실수를 저질렀던 때의 선택과 동일한 조건에서 선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수의 경험을 가진 상태로 다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기에 다른 선택을  확률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그것은 다음 선택에  다음 선택을 하는데에 있어서 경험이 된다. 내려놓지만 않는다면 방향성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천천히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급격히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빠르게 결말을 지으려는  같지만 주방은 이제 열린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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