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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묭 Oct 02. 2021

개짓거리


그러니까 계기는 류수영이었다. 최근 들어 더욱 자각하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가 평소에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굉장히 많은 생략을 하고 두서없이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다. 딱히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진 않고 오히려 매력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다시 지금의 일을 시작하면서 주방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된 것은 배우 류수영이 시작이었다는 말이다. 어떤 영상으로부터 파생된 알고리즘인지는 모르겠지만 쉬는 날 나는 집에서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유튜브를 훑고 있던 중에 추천 목록에 편스토랑 영상이 올라왔는데 류수영 배우가 나오는 영상이었다. 한두 편을 보다가 푹 빠져서 몰아봤다. 거기에 내가 바라던 내가 있었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주방을 컨트롤하고 있는 주도적인 나의 모습을 거기에 비추어 보았다. 거기까지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눈감아두고 가능성만을 봤다. 영상 속에서 류수영님이 추천하는 서적들을 찾아보고 내가 원하던 방향에 가장 알맞다고 생각하는 책을 주문했다. <더 푸드랩>이란 책이다. 굉장히 크고 두꺼운 책이다. 두꺼운 책은 좋다 오래 볼 수 있어서. 길게 돌아갈 수 있어서 긴 핑계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선호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 영상도 긴 영상을 선호한다 길게 틀어두고 다른 일을 하기에 좋다 지금 이 말들은 두서없이 이야기를 한다는 나의 모습을 더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저지르는 짓이다. 저자는. MIT 출신의 공학도이자 자칭 너드, 그리고 요리사이자 요리 기고가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요리 상식에 대해 왜? 라는 물음을 가지고 실험을 통해 잘못된 상식이 있다면 바로 잡는다. 책에는 다양한 레시피들과 여러 주방 과학에 관한 정보들이 담겨있다. 주방도구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음식물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냉장고 안에서도 온도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것들은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 주방 전반에 관해 과학적인 기초를 바탕으로 사려 깊게 설명이 되어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읽고 보고 보면 볼수록 착잡해져 가는 심정을. 나는 느낄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라고 여기기엔 너무나 작은 원룸의 냉장고, 불 조절이 가능하긴 한지 의심스러운 1구 인덕션.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막상 무언가를 시작하게 되면 가능성만을 보며 눈감아두었던 것들이 발에 차이고 걸린다. 때문에 결국 눈을 떠야만 하고 눈을 뜨면 보이는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광경은 거대한 부담을 내게 안긴다. 이 책 하나만으로 해결이 될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 하지만 이 책, 저자는 미국 사람이다. 결국 레시피나 여러 재료들도 국내와는 다른 경우가 있을 것이다. 물론 대체할 것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어쨌든 이 책이 국내 저자를 통해 나왔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A부터 Z까지 설명이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속에서 여러 의문이 생긴다. 궁금증이 생기고 내가 알아서 찾아봐야 한다. 정보를 찾으려 인터넷을 뒤지고 뒤지는 곳마다 하는 말이 달라서 열정은 또 거기서 뒤져버리는 것이다. 내 집, 장비들의 환경과 상태가 다르고 물론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인 기초를 바탕으로 한 설명을 통해 내 환경에 적용을 해가며 알아서 맞춰가야 하는 것이지만 일단. 나는 지금 눈을 뜨고 받은 거대한 압박에 잠시 자리를 비킨 상황이다. 그리고 잠시 자리를 비킨 상황에 마침 또 일하는 곳에서의 보직이 바뀌면서 도시락을 싸고 다닐 형편이 되질 않아서 또 그렇게 핑계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 상태로 또 한 달 하고 보름. 이제 다시 도시락을 싸고 다니던 원래의 환경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이게 지금 가장 최근의 근황이다 그러나.

그런데 이 한 달 하고 보름 사이에 또, 새로운 패러다임이 주방에 개입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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