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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묭 Aug 24. 2022

마스크


마스크로 한번 예시를 들어 보겠습니다. 당신은 마스크를 쓰고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기로 물건을 옮겨 나르던 중 당신은 잠시 물건을 내려두고 허리를 폅니다. 코가 간지러운 당신은 마스크를 살짝 내려 턱에 걸치고 코를 긁습니다. 시원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옵니다. 당신은 숨을 한번 후 하고 내쉰 후 무언가 혼자 생각에 잠긴 채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건을 옮겨 나릅니다.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로 일을 하고 있던 당신은 마침 보고서를 들고 지나가던 관리자와 마주칩니다. 당신은 미소를 지으며 관리자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관리자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걸음을 멈추어 서서 당신을 바라봅니다. 관리자는 당신에게 마스크를 똑바로 써달라고 얘기합니다. 당신은 전혀 몰랐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짓고 숨을 쉬기가 답답해서 그렇다고 말을 흐리며 마스크를 고쳐 씁니다. 관리자는 최근 감염된 직원의 사례를 들며 조심해달라고 얘기합니다. 다들 민감하니 서로 배려하자고 항상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고 자리를 떠납니다. 당신은 미소를 짓지 않은 채 다시 물건을 옮겨 나릅니다. 당신은 생각에 잠깁니다. 당신은 정말로 숨을 쉬는 게 답답하고 힘들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억울한 감정을 느끼며 숨을 쉬는 게 답답하다는 생각을 주제로 삼아 과거의 기억을 훑습니다. 당신은 사랑니 발치를 하기 위해 치과에 다니던 시기를 떠올립니다. 치료를 받던 도중 숨 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엄습해오던 불안과 공포에 치를 떨었던 것을 기억해냅니다. 또 당신은 스쿠버 다이빙 체험을 하던 때 패닉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것을 상기해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은 어떠한 특정 조건 하에서 겪게 되었던 돌출된 경험이기에 당신은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각하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확신은 없지만 당신은 이미 믿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서 당신은 숨 쉬는 것이 답답할 때가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몸이 아픈 것이 아니냐며 걱정합니다. 어렸을 때도 그런 적이 자주 있었던 것 같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를 떠올립니다. 어머니는 그러고 보니 당신을 출산하던 때에 당신이 탯줄을 목에 감고 나왔고 잠깐 숨을 안 쉬어 모두가 놀라 소란스러웠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당신은 당신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이제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닥친 근원으로부터의 불안을 느끼며 수긍하게 되면서도 억울한 감정을 품습니다. 당신은 며칠 전 관리자에게 마스크를 똑바로 쓰라는 얘기를 들었던 장면을 떠올리며 더욱 억울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런데 사실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출산하기 전 당신의 할머니로부터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나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러한 미래를 잠시 상상하며 불안해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흐릿하게 마모된 기억 속에서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더듬어 주섬주섬 끌어모아 맥락에 맞도록 재조합하여 당신에게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제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각을 지각하고 직감하며 고민하던 것들에 대한 근원을 알게 되었기에 당신은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진실은 아니지만 당신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것은 진실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근무 중에 잠시 담배를 태우며 다른 근무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다른 근무자들 아무도 묻지는 않았습니다만 당신은  이야기를 건네고 당신과 같은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텐데 이러한 시대에 본의 아니게 자기만 힘들고 불편하다고 약은 행동을 하는 사람처럼 비치는  너무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근무자들은 당신을 두둔하고 위로해줍니다. 당신은 기분이 좋아져 미소를 지은  다시 물건을 옮겨 나릅니다. 의식하지도 못한  당신은 다시 마스크를 턱에 걸친 채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 당신 앞을 지나가던 관리자가 당신 앞에 멈추어 서서 일을 하고 있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관리자를  당신은 해맑게 인사를 건넵니다. 관리자가 무언가 말을 꺼내기 전에 당신은 먼저 알아차리고 마스크를 고쳐 쓰며 슬픈 눈빛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건넵니다. 관리자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당신은 그래도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비칠지 안다고 자기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에 신경 쓰겠다고 방금은 정말 다른 이유로 물을 마시려 내렸다가 잊었을 뿐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관리자는 그게 아니고 사실은 다른 이유를 묻기 위함이었다며, 보고를 올리기 위해 오늘 당신이 지각한 사유를 묻기 위함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나온 김이라며 최근 당신의 근태에 관하여 같이 일하는 근무자들의 지적이 많이 보고 된다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당신은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집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시간이 부족하여 당신은 말을 제대로 이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말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목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은  경험 이후로 이제는 진실로 숨을 쉬는 것에 대한 불편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이야기는 하나의 예시일 뿐입니다. 저는 그저 어떠한 원인으로부터 도출된 과인지, 과연 그것이 원인과 결과라는 하나의 일직선 상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당신이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숨이 가빠오는 것은 어떠한 원인이 있습니까? 탯줄에 목이 감기어서 그렇습니까? 커피를 마셔서 그렇습니까? 그저 당황해서 나오는 신체적인 반응입니까? 하나의 원인이긴  것입니까? 과연 그것을  집어서 특정할  있겠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흐름이 있다고는 느껴집니다만 하나의 원인과 결과라고 콕 집어서 확신한다고는 감히 이야기할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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