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눈에 보이는 듯이 뚜렷하게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길을 나설 때마다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퇴근하는 정오 즈음은 날씨가 포근하고 따뜻하지만 출근길을 생각하여 얇은 외투를 하나 걸치고 나가야 합니다. 가을까지 일을 하고 겨울에 쉬겠다는 저의 계획도 어느덧 눈에 보이는 듯이 뚜렷하게 성큼 다가왔습니다. 10월 28일이면 저는 계약이 만료가 됩니다. 연장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겨울엔 쉬어야 하니까요. 겨울에 쉴 수 있게 된 것이 과연 얼마만인지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작년에 쉬었더군요. 이렇듯 무언가 그럴 싸한 드라마가 머릿속에서 꾸며지는 것은 찰나의 순간인 것 같습니다.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편집이 들어가 있죠. 쉬면서 무엇을 할지 계획을 꾸리고 있습니다. 무어랴 더 특별할 것이 있겠습니까. 무어랴 더 특별할 것이 있겠습니까? 잠시 쉬면서 편안함을 즐기다가도 먹고살 궁리를 하며 불안해하다가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락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에 머물고 그 이후로도 제 삶을 내어 둘 수 있는 다락방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내면에 그러한 공간을 짓는 것을 상상합니다. 어떤 공간으로 만들지 어떤 것들을 장식하며 꾸밀지 그 안에서 어떤 것들을 해나갈지.
라고 무언가를 또 드라마틱하게 포장하며 꾸며내고 있는데요. 시작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영심도 중요한 동기 중에 하나가 될 수도 있죠. 다 주워 담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싼 똥 고이고이 주워 모아 다락방에 쌓아두면 되겠죠. 똥을 싸고도 줍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지나다니다 남이 싼 똥을 밟게 되면 그렇게 열이 받는 거겠죠. 자기가 싼 똥은 좀 치우자고 다짐하며 제가 싼 똥을 둘러봅니다. 이전에 스님들을 따라다니는 다큐를 하나 본 적이 있는데요. 스님 한 분이 밥값을 어찌 갚으랴 라며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똥들을 어떻게 다 치울 것인지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이렇게 오늘도 질펀하게 똥을 쌉니다. 생각 없이 싸고 주우면서 생각합니다. 생각하면서 싸면 똥이 아닙니다. 일단 싸고 생각합시다. 치우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