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꿈을 꿨어
채식주의자가 되는 꿈은 아니고 하여튼 간밤에 꿈을 꾸다 새벽 1시쯤 눈을 떴다. 이르게 잔 감도 있었지만 그냥 꿈에 놀라서 깼던 것 같다. 깨고 나서 왠지 기록해야만 할 것 같아 바로 카톡 나와의 채팅에 메시지를 보냈다.
‘꼬마 종교신도’ ‘자해 하지마 너를찾아’ ‘글을써봐’ ‘안녕.사라지다’ ‘미안해’ ‘옆에서 같이 해줄걸’
꿈에서 본 장면을 되새겨 가며 심란심란한 상태로 1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다시 잠에 들었다. 아침. 아침에 눈을 떠 메시지를 확인했을 땐 이미 많은 장면들이 날아간 뒤. 살은 없고 뼈대만 남았다. 남은 뼈대를 맞춰보니 이렇다.
꿈
꼬마 아이가 나온다. 종교 혹은 그 애가 종교처럼 믿는 무언가가 그 애에게 상처를 준다. 평소 아이답지 않은 모습을 봐왔기에 나는 그 애가 어련히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스스로를 상처 주지 말라고. 속에 있는 너를 찾으라고. 글을 써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한다. 글을 쓰다 보면 속이 정리가 되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질 거야. 그리고 다음 날 아이가 있던 자리엔 구겨진 종이뭉치가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본 종이엔 두 글자가 적혀 있다. 안녕.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미안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조언이나 해결방안을 제시해줄게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줄걸.
해석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가끔 꿈속에서 내가 나한테 메시지를 보낸다고 느낄 때가 있다. 평소의 고민이나 연체돼있던 감정이 드러난다고 할까. 아이에게 해결책을 제시할 때 난 속으로 피로감을 느꼈다. 그냥 알아서 좀 하지 내가 또 해결해 줘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그 아이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나이가 많아서? 경험이 많아서? 책을 더 읽었으니까?
보고들은 게 아이보다 많아 난 먼 곳을 볼 수 있었다. 멀리 볼 수 없었던 아이는 내 옆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난 고개를 숙여 옆을 바라보는 게 귀찮아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꿈에서 아이 얼굴은 보이지 않고 얘기하는 내 모습만 보였었다). 내 오만함 때문이다. 경계하라는 의미구나. 이렇게 나름의 해석을 했다.
교훈
꿈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난 이렇게 일상 속에서 또 교훈을 얻었구나. 대견하다. 하지만 중독되진 말자. 사랑에 빠진 자기 모습에 취해 억지로 감정을 쥐어 짜내는 그런 사람이 되진 말자.라는 교훈을 또 얻었다. 경계해라. 경계를 경계해라. 아니 이제 그만.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스스로 젖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감성'에 젖되 '감상'에 젖지는 말자. 스스로 다짐한다. 또 교훈을 얻었다. 아니 이제 진짜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