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의 나무
기억이라는 씨앗이 추억이라는 나무로 자랄 때
안녕. 잔망스럽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쑥스러운 듯 엄마 등 뒤에서 미소 짓는 아이. 잠깐의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내 엄마가 나와 반가운 얼굴로 아이 엄마를 맞았다. 아이와 엄마들은 집으로 들어가 먼저 온 손님들과 식사를 했다. 아이는 식사 후 가만히 앉아 있다 어른들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혼자 밖으로 나왔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난 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우리 강아지가 행여 손님들을 물까 봐 곁에 앉아 진정시키고 있었다.
뭐해? ‘당돌하구나.’ 낯선 사람이 오면 물거든. 그래서 붙잡고 있어야 돼. 만져도 돼? 내가 옆에 있으면.
강아지랑 어울려 놀며 알게 된 사실은 이랬다. 나이는 9살. 위로 사이가 나쁜 언니가 한 명(언니에 관해 좋은 얘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으니 확신할 수 있다). 언니 말고 오빠가 있었으면 한다. 개를 키우고 싶지만 아파트라서 안 된다. 그래서 여기가 마음에 든다. 아이가 막 트럭에 올라갔을 때 얘기가 끝났는지 어른들이 한 둘씩 밖으로 나왔다. 아-진짜 이 말썽꾼. 아이 엄마가 나와 아이를 끌어내렸다. 어딜 가든 하여튼 가만있질 못해요. 너 자꾸 이러면 여기다 버리고 갈 거야. 상관없어 여기가 더 좋아. 우리 엄마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여기서 살래? 여긴 남자들 밖에 없어서 칙칙해- 하루 자고 가. 엄마의 진심이 느껴졌다. ‘하긴 좀 칙칙하긴 하지.’
농담을 가장한 권유와 진심을 가장한 대답이 오가고 진심으로 무장된 아이의 칭얼거림은 서서히 멀어져 갔다. 다음 주말을 기약한 채.
그 뒤로 한 몇 년은 아이를 볼 수 없었다. 결혼을 기약했었나? 그랬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되면 여기서 나랑 살겠다고 했다.
너무 꽉 끼지 않게 적당히 교복을 줄였을 때쯤 우린 다시 만났다. 귀엽게 생겼네. 남자 친구 사진을 보고 내가 말했다. 근데 좀 재미없어. ‘여전하구나.’ 그녀는 잊어 갈 만하면 나타났다. 원하던 대학에 가려고 비행기를 타기 전날. 유학을 가려고 비행기를 타기 전날.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 부모님끼리 친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간간히 마주치며 그녀의 삶을 지켜봤다. 응원하는 아역 배우의 성장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좋아하는 배우가 간간히 걸리는 영화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을 때 난 그녀를 떠올렸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마지막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면 그녀는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난 유언대로 무덤 위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나무가 자라 내 키를 넘어설 때쯤 편지가 한 통 왔다. 무덤에서 보내는 편지라니 제목 참. 무덤덤한 표정으로 편지를 받았지만 두 손은 떨렸다. 앞장 대부분은 농담으로 가득했다. 다 죽어가는 와중에 농담이라니. 새삼 그녀의 밝음에 가슴 한편 그늘이 졌다. 그나마 뒷장은 진지했다.
‘아저씨가 아저씨라서 다행이야.'
'나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아 줘서 다행이야.’
내 마음을 네가 어떻게 안다고 이 아가씨야.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당신은 나무야. 내가 힘들 때 기대고 쉴 수 있던 나무. 이젠 내가 아저씨의 나무가 되어 줄게.’ 난 정말 나무처럼 가만히 여기 있었을 뿐이다. 어떤 말도 위로도 해준 적 없다. 그녀가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 여기로 왔을 때 난 그냥 여기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걸까. 많이 힘들었나 보다. 와서 실컷 울기라도 하지. 네 눈물을 자양분 삼아 비라도 가릴 수 있게 가지라도 좀 더 키웠을 텐데. 나뭇잎 하나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안 울어 바보야.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 편지와 함께 봉투 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