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모든 걸 다 아는 노인을 만났다.
정말 대단하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어떠한 주제에도 막힘이 없다.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인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잠깐이라도 노인과 인연이 닿은 사람은 저절로 제자가 된다.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길었던 만남이 끝났다.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노인과 만나는 동안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가 떠오른 건 우연일까. 필연일지도 몰라.
노인은 수녀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수녀님과 알고 지낼지도 몰라. 모든 걸 아는 사람이니까.
아, 확실히 신부님은 몇 명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수녀님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필연인가.
우연인가 필연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짧은 인연이 악연으로 변모하고 있는데 운명을 논할까 보냐.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노인의 의도완 다른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만약 이런 반응까지 의도한 주절거림이었다면 '탁'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좋은 시가 가슴 깊이 와 닿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부터 내 기도는 나이가 들어도 이 시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 작자 미상(17세기 수녀)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화가 난다. 가시질 않는다. 좀 가세요 이젠. 그만 가라고 덧붙여 쓰는 글이다. 막 쓴다.
nba 역사상 최고의 3점 슈터 ‘레이 앨런’에 관한 콘텐츠(by 열정의 기름붓기)가 있다. 20년간 변하지 않는 정확한 슛 폼. 한 농구 해설자가 ‘타고났다’라고 표현하자 레이 앨런은 “내가 얼마나 땀을 흘린지도 모르면서, 내가 들인 노력을 제발 과소평가하지 마라.”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나도 화가 난다. 조금 다른 의미로 나는 화가 난다. 내 꿈의 퍼즐 조각들. 셀 수 없이 많은 퍼즐 조각 중 단 한 조각 만을 보고 어떻게 전체 그림에 대해 다 안다는 듯이 그렇게 가볍게 떠들어 댈 수 있지.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이야기하지 마라. 당신의 칭찬이 달갑지 않다. "내가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알아?"라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해보지 않았으니까.
노력이라고. 처음 찾았던 퍼즐 조각. 그 하나가 전부인 줄 알았다. one piece. 난 '원피스'를 찾았다. 그게 전부였어도 좋았을 테지만(집착이 아니라 그냥 좋은 거라면) 조각은 많았다. 숨겨져 있어 내가 모르는 것도 많을 테니 셀 수 없겠지. 그래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 해보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원피스'를 발견했을 때의 설렘, 그리움, 아쉬움 등등의 감정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다시 설렐 수도 있어서. 이루지 못한 꿈. 난 왜 노력하지 않는가. 하여튼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있는데.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도 모르면서. 아니 알려고도 안 했으면서. 함부로 가타부타 얘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더 이상은 마냥 좋지 않은 걸.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거기에 종이와 펜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그래서 이 길이라고 믿었는데. 한참 가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을 때 많이 아팠는데. 조그만 장애물에도 쉽게 넘어질 때 스스로가 미웠는데.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만화가'라고 적었던 일에 얽매여서 그런가 싶었을 때. 중간과정은 생략하고 성공한 미래의 모습만 상상할 때. 스스로 얼마나 한심해했는데. 그리고 이제는 별생각 없이. 가볍게 또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것저것 병행하면서 질리지 않게 서로가 도움이 되게. 유명해지지 않아도 되니까. 속세의 성공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가능한 가볍게 하려고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내가 하는 노력은 이게 전부인데 당신이 잠깐 스치듯 보고서 한 번에 가볍게 단정해 버리면. 아, 당신도 가볍게 즐겁게 하려는 건가. 그게 당신의 꿈이라면 애써 부정하지 않을게. 여하튼 내 고민은. 내 노력은 어디로 가는 걸까. 당신은 내게서 무엇을 얼마나 보고서 얘기하는 걸까. 그렇게 소개하는 걸까. 내 가능성은 도대체 무엇이며. 내 무얼 키워준다는 것일까. 증오심을 키워주려나.
고마운 건 다시금 뚜렷하게 알게 됐다는 것이다. 노력이 '노력하면 된다'의 노력이라면 난 노력파가 아니라는 것. 내 노력은 '하고 싶을 때'와 '해야 하지 않을까'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노력이라는 걸. 두루두루 즐겁게.
정말 막썼구나.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 그래도 후련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