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단상

by 기묭


누군가의 문제에 개입할 때에 비록 선의를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 당연하게 여기는 나와 달리 너에겐 그 일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우리는 많이 달라졌을까.


휴대폰이 고장이 나서 통화가 안된 날이 있었지. 너는 그다음 날 새 휴대폰을 구입했어. 나는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에 네게 그 방법을 제시했다. 그런데 넌 왜 '그냥'이라고 대답했던 거야.

안타까워서 그랬어. 안타깝고 야속해서. 누가 봐도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단지 ‘그냥’이라고 대답하는 네가 야속해서. ‘네가 게을러서 그래’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네가 낯선 사람과 얘기할 때에 견디기 힘든 순간이 때때로 찾아온다는 걸, 그래서 미용실을 갈 때나 옷을 살 때 또는 어떤 공적인 업무를 처리할 때에 빨리 끝내려 대충 넘기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는 걸, 하지만 금전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이 편한 게 더 나아서 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는다는 걸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을 때 난 많이 서운했어. 왜 내게 말하지 않았던 거야. 나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니. 나도 내가 어떻게 반응했을지 예상은 돼. 그래도 서로 노력해 볼 수는 있잖아. 왜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했던 거야.


휴대폰을 구입하러 다. 직원이 따라붙었고 차근차근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럴 때 내가 취하는 방법은 확신하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그의 말투, 톤, 행동거지 속에서 징표를 찾는다. 그리고 이 사람은 믿을만하다고 최선을 다해서 확신한다.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고 내 손엔 새로운 휴대폰이 놓여있다. 물론 불안감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잊은 게 있다며 주차장까지 달려와 거친 숨을 뱉으며 멋쩍은 미소로 명함을 건네는 직원의 얼굴을 보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사라졌다고 믿었다.

이건 내 약점이다. 네가 알아주지 않아 서운한 것은 아니다. 네가 눈치챌 만한 어떤 힌트도 남긴 적이 없었으니까.

네가 마치 내 후견인이 되려는 양 이것저것 문제 될 만한 부분들을 하나둘 체크하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그때 얘기했어야 했다. 내 표정이 굳은 게 치아 얘기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한껏 자상한 미소를 띤 채 친절하게 설명해주던 너에게 속으론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는 걸 그 날 바로 얘기했어야 했다. 그리고 후회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확실히 설명했어야 했다. 누구의 탓도 아니야. 그냥 우리는 안 되겠어. 그렇게 얘기하고 끝냈어야 했다.


너의 윗니와 아랫니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네게 불편하지 않느냐 물었지. '부정교합인 것 같네' 한 때 머물렀던 분야였기에 나는 가능한 상세히 조언해주었어. '난 괜찮은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혹시 모르니까 한 번 가보자, 내가 잘 아는 선배 있어' '그래도 비쌀 텐데..' 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기분이 상하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너의 표정을 살폈어. 살짝 굳은 듯한 표정을 보고 나는 더욱 친절하게 더욱 쉽게 설명해주었지. '나중엔 나한테 고맙다고 할 걸?'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그 뒤로 너는 밥을 먹을 때 가끔씩 웃으며 이 얘길 꺼내곤 했지. '전엔 몰랐는데 듣고 나니까 씹을 때 좀 불편하다는 게 느껴져' '내가 괜히 얘기했나 봐' '아니야' 정말 괜찮다며 신경 쓰지 말라는 너의 얼굴이 조금 굳은 듯이 보였던 건 내 착각이 아니었다고 생각해도 되겠니. 그게 여러 이유 중 하나였으면 해. 여러 요인들이 말투나 행동 같은 외적인 요인들이었으면 해. 노력하면 고칠 수 있었던 것들이었으면 해.

끝에 다다랐을 때 넌 많이 피곤해했지. 일이 너무 많아 육체적으로 힘들다며 하소연했지. 힘들어하는 너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미어졌어.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어. 자존심 상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과하게 나섰어. 힘들어하는 네 모습을 보는 게 싫었으니까. 너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내 진심엔 일말의 의심도 없었어. 나는 너를 위했어.


일부러 일을 늘렸다는 걸 너는 알고 있을까. 핑계가 되길 바라며 일부러 일을 늘려갔던 걸 너는 알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너의 입에서 나오기를 바랐던 걸 너는 알고 있을까. 정말 바란다면 스스로 먼저 나서야 한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쯤 서로 많이 아물지 않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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