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에 대해서

feat. bon iver - skinny love

by 기묭



금연


나 금연할 거야. 길을 걷다 갑자기 멈춰 선 채 원우는 말했다. 나 금연할 거라고. 나는 웃었다. 너 원래 담배 안 피우잖아. 어. 그냥 다짐하는 거야 앞으로도 안 피울 거라고. 나는 이유를 되묻지 않고 속으로 의미를 헤아려보려고 그러려고 그냥 말없이 웃기만 했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원우는 이따금씩 걸음 속도를 줄이고 주위를 둘러봤다. 가끔 그랬다. 둘러보고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아는 단어들이었지만 맥락이 없었기에 나는 알면서도 몰랐다. 원우는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었다. 그래서 입대한다고 했을 때 나는 겉으로 내보이진 않았지만 속으론 걱정했다. 보기와 달리 자존심이 센 녀석이라 내가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 듣고 나면 기분 나빠할지도 몰라 얘기하진 않았다. 근데 사실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나도 무어라 설명할 수 없어서 얘기하고 싶어도 몰라 얘기하지 못했다. 입대하던 날 원우는 혼자 훈련소에 갔다. 원우가 입대하고 3개월 뒤 나도 입대했고 우리는 군 복무기간 내내 서로 아무 소식 없이 지냈다. 가끔 나는 담배를 피우러 가는 선후임들을 볼 때 원우를 떠올렸다. 금연한다던 원우의 말을 떠올렸다. 무슨 의미였을까. 그냥 단순히 담배를 안 피울 거다? 담배가 싫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싫다? 싫다면 왜? 그런 분위기, 부류라고 해야 할까? 나쁜 느낌? 모르겠다. ‘원우만 알겠지’ 왠지 슬퍼졌다. 나도 모른다면 아무도 모르겠구나. 멀리 있는 원우가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득히 멀리.




머리


내가 전역하고 나서야 우린 다시 만났다. 자주 모였던 카페에서 우린 다시 만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인사도 건네지 못하고 가만히 원우를 봤다. 원우는 짧은 머리를 하고 나타났는데 정말 짧았다. 만지면 까슬까슬한 정도 그 정도 길이였다. 수건을 붙이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을 정도로 까슬까슬한 그런 정도였다. 서로 쌓여있던 질문들은 원우의 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왜? 내가 물었다. 원우는 웃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 얘기를 시작했다. 원우는 말재주가 좋은 편이었는데 재주 많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손재주도 좋았다. 손재주가 좋은 걸 알고 있었기에 군대에서 이발병을 했다고 들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원우는 일병 때부터 이발병이 되어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는데 습득이 빨랐다고 했다. 상병 땐 대대에서 가장 잘 나갔다고 했다. 모두들 만족했다고 했다. 근데 문제는 원우의 머리를 잘라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인데 있었어도 원우는 자기 기준에 성에 차지 않는다며 머리를 맡기지 않았을 것이었기에 있었어도 없었을 테지만 실제로 있었는데도 정말 맡기지 않았기에 어쨌든 원우의 머리를 잘라줄 사람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원우는 혼자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장 긴 날을 끼워서 머리를 밀었는데 길이가 길다 보니 목 뒤에 있는 잔털이 잘리지 않았다. 짧은 날로 잔털만 자르자니 뒤편이라 손보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그냥 잔털을 자르기 위해 가장 짧은 날로 머리 전체를 밀었다. 잔털을 자르기 위해 전체를 밀었다고. 이때 느꼈다. 원우가 입대하던 날 내가 느꼈던 걱정과 비슷한 어떤 것을. 원우는 그렇게 짧은 머리를 하게 됐다. 근데 지금은 왜? 지금은 왜일까. 원우는 웃었다. 이게 편하더라. 가볍다. 남들에게 무거울 수 있는 문제들이 원우에겐 대체로 가벼웠다. 가볍게 내려지는 원우의 결정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됐다. 원우가 입대하는 날 내가 느꼈던 그 걱정과 비슷한 어떤 것이 걱정이 됐다. 걱정이 계속되어 나는 대화중이면서도 대화중이 아니었고 같이 있으면서도 같이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원우를 바라봤다. 눈앞에 있는 원우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득히 멀리.




명제


"명제"라는 건 논리학적으로 뜻이 분명한 문장을 말한다고 한다. 어떤 말을 본 순간 '참' 혹은 '거짓'을 대번에 알 수 있는 말을 말한다고 한다. 원우는 '남들에게 무거울 수 있는 문제들이 원우에겐 대체로 가벼웠다'는 문장을 명제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증명하려고 그랬나 보다. 영정사진을 보다 문뜩 들었던 생각이다. 원우의 부모님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 장례식은 성당에서 치러졌다. 나는 잔일을 도왔다. 늦은 밤이 되었을 즈음 원우의 어머니에게서 한 일화를 들었다.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폰만 보던 원우를 보던 원우의 어머니는 걱정이 됐다. 너 그러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된다. 원우는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돼서 못 견디면 자살하지 뭐. 원우의 어머니는 원우의 말을 듣고 슬퍼져서 말없이 원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무랐다. 일화를 듣고 나는 사진 속 원우를 바라봤다. 이젠 정말 멀리 있었다. 아득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그 정도로 멀리 가버렸다. 사인은 자살. 눈과 귀가 멀어서는 아니었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아무도 모른다면 나도 몰랐다. 가까이 있으면서 멀리 지냈던 사람도 멀리 있으면서 가까이 지냈던 사람도 그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원우만 알겠지' 이 말을 떠올렸을 때 나는 정말 너무나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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