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 순이는 말했다

by 기묭

순이는 커다란 나무토막 위에 올라서서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때 마침

고라니 한 마리가 숲 속에서 튀어나와

들판을 가로지르며 뛰어다녔다

순이는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순이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고라니가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이는 커다란 나무토막 위에 올라서서

해지는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때 마침

고라니 두 마리가 숲 속에서 튀어나와

장난을 치며 들판에서 뛰어놀았다

순이는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이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이걸로 됐다'

속으로, 순이는 말했다


순이는 커다란 나무토막 위에 올라서서

해지는 들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집에 순이 말곤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속으로 말했을 것이다

순이는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한 편으로는 좋았는데

한 편으로는 외로웠다

그래도 순이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로 했다

'지금은 이걸로 됐다'

속으로, 순이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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