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스본행 야간열차 - 파스칼 메르시어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 교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똑같이 시작됐던 그날 비 오는 다리 위에서 그녀를 만났다. 붉은 가죽 외투를 입은 여자. 동화 속에서처럼 부드럽고 한없이 길게 늘어지며 속삭이는 듯한 남쪽 나라의 억양, 듣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공범으로 만들어버리는 목소리. 조금만 함께 걸어도 되겠냐는 그녀의 물음에 그레고리우스는 그러라고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포르투게스." 모국어가 무엇이냐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레고리우스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지금도 앞으로도 모국어가 포르투갈어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시간이 늦었다. 1교시가 시작됐을 것이다. '조금만'은 얼마나 되는 거리인가? 그레고리우스는 학교로 향하고 그녀도 따라나선다. 그들이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그레고리우스는 그녀에게 뒤쪽 구석에 있는 빈자리를 가리키고 진도대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레고리우스는 여자를 쳐다보지 않는 듯 행동했지만 그녀가 젖은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쓸어내는 모습, 하얀 두 손을 꽉 쥐고 있는 모습, 시선을 멍하니 창밖으로 던지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이 상황을 참을 수 없어 곁눈질로 시계를 흘끗 보았다. 쉬는 시간 10분 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그레고리우스를 보고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레고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한번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이건 서문입니다." 책방 주인이 말했다. 수업 도중에 뛰쳐나온 그레고리우스는 포르투갈어의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오직 한 가지 이유로 에스파냐 책방에 서 있었다. 책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책 [언어의 연금술사 -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 "번역을 해드릴까요?" 그레고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에 들리는 소리가 온몸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그 글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그것도 모든 것이 달라진 이날 오전을 위해 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_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섬세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관찰의 대상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고,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남는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익숙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경험들을 이해하기 위한 왕도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이상하고 묘하게 들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서야 깨어 있다는 느낌.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건 서문입니다." 주인은 이렇게 말하고 책장을 넘겼다. "저자는 장마다 숨어 있는 경험들을 파헤치는 것 같군요. 스스로의 고고학자가 되는 거지요. 몇 쪽이나 되는 장도 있고, 아주 짧은 장도 있어요. 여기 이건 단 한 문장이네요."
_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사겠습니다." 그레고리우스가 말했다.
스스로의 고고학자
'저도 사겠습니다.' 사실 책을 구입하고 나서 읽게 되었던 문장이지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사겠다고 얘기했던 그레고리우스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내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 이후 페이지들은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를 쫓아 리스본을 휘젓고 다니는 내용을 한 장 한 장 꽉꽉 눌러 담고 있다. 뒷 표지의 적혀있는 첫 문장이 아주 적합해 보인다. '너무나도 이지적인 사색.' 그레고리우스와 함께 프라두의 글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이지적인 사색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가만히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사색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많은 장점 중 하나인 것 같다. 2년 전, 이 길고도 장황한(586p..)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내가 품고 있던 건 하나의 단어였다.
_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의 경고). 어두운 수도원의 담. 내리깔은 시선. 눈으로 덮인 묘지. 꼭 이래야 하는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에 의식을 집중하기. 흘러가는 유한한 시간에 대한 자각을 자신의 습관과 기대, 특히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위협에 대항할 힘의 원천으로 삼기. 다시 말해 유한 시간에 대한 자각을, 미래를 닫지 않고 열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삼기 - 좋아하지 않던 직업을 그만두고, 싫어하던 환경을 떠나기.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기.
죽음의 경고. 이 경고를 안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다양한 이유를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까. 두려웠으니까. 상처는 겉옷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_자퇴. 자퇴는 내게 있어 하나의 판타지였다. 판타지가 현실이 될 수는 없었다. 잘 알고 있었기에 가볍게 자주 내뱉었다. 자퇴라는 말속엔 열린 미래에 대한 수많은 가능성이 내재돼 있었기에 생각하거나 입 밖에 내어보는 것만으로도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세상에나. 판타지가 현실이 되었을 때 앞전의 실제 했던 현실이 판타지가 되었다. 나는 자퇴를 했고 적잖이 후회를 했다. 종종 대학생활의 판타지를 상상하며 그리워했다. 수많은 가정. 좀 더 일찍 복학했더라면. 수강신청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엠티를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간과해 놓쳐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일까 저것일까. 둘 다이겠지. 아니 더 많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단 한 가지 요인만으로 결정할 때가 있나? 익숙한 삶과 결별을 고했지만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복학하던 당시에 난 내가 아니고 싶었다. 다른 나이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어떠한 자극도 변화도 없이 지낸 1년간의 칩거 비슷한 생활 속에서 쌓아 올린 건조한 모래성이었다. 믿음의 모래성은 외부의 자극에 언제 존재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더는 자극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상상하던 나와 실제 하는 나 사이의 격차를 계속해서 확인해야만 하는 건 너무나도 끔찍했다. 내가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 자신의 나약함을 가려주었다. 복학 후 첫 전공 수업시간, 교수님이 들어와 출석을 부를 때 갑자기 느꼈다. 나는 이걸 배우고 싶지가 않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이 계속해서 끓어올랐다. 죽음의 경고.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사립 대학의 높은 학자금. 원치 않은 배움. 수강신청 시스템에 대한 분노. 여러 외적인 요인들이 내면의 상처를 보지 못하게 가려주었고 나는 홀가분하고 당당한 마음으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스러웠다. 갑작스레 불투명해진 미래에 대한 고민, 또다시 혼자서 모래성을 쌓고 있다는 기분. 온갖 격언에 힘입어 모른 척 덮고 넘어갔던 내면의 상처와 균열. 이 상처와 균열이 시간이 흘러 다른 곳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다시 나타났을 때. 그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퇴할 당시, 외적인 요인보다는 내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났던 상처와 균열이 또 다른 상처와 균열(스스로 가둬두었던)을 보지 못하게 덮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그땐 혼란밖에 없었다. 난 혼란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모순덩어리다. 세상에나. 혼란을 인정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익숙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경험들을 이해하기 위한 왕도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이상하고 묘하게 들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서야 깨어 있다는 느낌.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 많은 빚을 졌다. 두 번째 읽고 나서 나는 이 책을 언젠가 다시 꺼내 읽게 될 것이라고 느꼈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욕구가 또다시 일 때 꺼내서 다시 읽어보고 고민해 볼 것 같다. 복잡한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개인의 행복에 대한 권리와 타인에 대한 의무감 사이에서 중요성이나 가치를 저울질 하기란 매우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고. 결단이 어려운 경우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 저자는 대답한다.
정해진 건 없어요. 경우마다 다르기 때문에 해결책도 개별적이지요. 한 번쯤 “객관적으로 옳은” 것이냐 “그릇된” 것이냐를 물어볼 수는 있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인 의무감에서 자기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삶을 살아가죠. 아이들 때문이기도 하고, 파트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래야 마땅하고요. 그렇지만 의무감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허덕이면서 다른 사람의 생에 좋은 영향을 줄 수는 없습니다. 30년 혹은 40년이 지난 뒤 뭔가 자신을 위한 다른 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걸 깨닫는 경우도 있어요. 부모들이 대게 그렇지요. 하지만 거기서 자유로워지려면 상황 전체를 뒤흔들어놓아야 합니다. -작가와의 대담 중
최순실(허세)로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지만 고영태(실세)로 끝이 났다(농담이다.. 기사 제목을 보고 떠오른 농담..). 스스로의 고고학자가 되는 길. 이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입구는 아주 가까이에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것. 인정하기 싫지만 혹시 모르니까 한 번 인정해 보는 것. 글로 써내려 갈수록 자꾸 미끄러진다는 생각뿐이다. 그래도 즐겁다. 그러나 꼭 글일 필요는 없겠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있는 상태라면 꼭 글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
어디로 가든. 당신도 야간열차를 타야 할 때가 온다.
당신은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당신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당신은 반드시 그곳에 남는다.
낯선 정거장의 플랫폼에 발을 딛고
역사에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당신은 겉으로만 먼 곳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 외딴곳에 왔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 먼 곳을 돌아 다시 찾아왔을 때.
당신이 발견하는 것은 이미 예전의 당신이 아닌 당신일 것이다.
어느 곳에 정차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야간열차를 타고 있다.
조금 떨린다. 그러나 아주 기분 좋은 떨림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본명은 페터 비에리). 출판사 들녘. 값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