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치는 노인

by 기묭

나는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중에 두고 온 것이 있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사무실엔 불이 꺼져 있었고 창고를 관리하는 노인의 컨테이너에만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사무실 키를 받기 위해 컨테이너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려고 하는데 컨테이너 안에서 '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타 소리였다. 조율을 하는 듯 소리가 늘어졌다 당겨졌다 했다. 잠깐의 침묵이 왔고 나는 침을 삼켰다. 발을 몇 번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연주가 시작됐다. 들어본 적 없는 기타 연주였다.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면서도 독창적인.

어렸을 적에 난 최고로 쿨한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비록 재능이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후 일찍 접긴 했지만 듣는 귀는 나쁘지 않았다. 노인의 연주는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일찍이 꿈꿔왔던 경지였다. 노인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 정도 경지엔 오를 수 없겠다는 자괴감에 빠져 진작에 그만두고 다른 꿈을 꿨을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고 노인이 기타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성큼성큼 발소리가 다가왔다.

"누구요!"

"김 아무개입니다."

노인은 나를 부를 때 아직은 햇병아리라 이름을 불러줄 수 없다며 김 아무개라고 불렀다. 문이 열렸고 조금은 심기가 불편한 듯한 표정의 노인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키를 건네받고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로 향하며 속으로 수많은 질문이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볼 일을 마친 후 키를 돌려주며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기타.."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노인이 소리쳤다.

"꺼져!"

문이 닫혔다. 집으로 돌아가며 노인의 반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쉽게 얘기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집에 돌아온 후 한쪽 구석에 쑤셔놓았던 기타를 꺼냈다. 조심스레 줄을 튕겨 보았다. 방금 전 노인의 연주가 잊히지 않았다. 내 생에 그런 연주는 처음이었다. 갑자기 생각이 들어 주소록을 뒤졌다. 음반사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노인의 연주를 표현했다. 친구는 호기심이 든다며 조만간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다음날. 여느 때처럼 일을 하고 있는데 노인이 컨테이너 앞 접이식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 느낌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라고 묻는 것 같았다. 같이 일하는 현장 동료들에겐 얘기하지 않았다. 얘기해봐야 믿지도 않을뿐더러 그 연주를 듣고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주둥이를 나불거릴 것을 생각하니 괜스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지.' 나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껏 경멸했다.

퇴근 후 나는 평소와 다르게 곧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노인은 아직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내가 꺼지라고 했지?" 노인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래도.."

"알아, 나도 내가 잘 치는 거 알아" 노인이 말했다.

계속해서 말했다.

"뻔하지. 왜 여기 있냐고? 왜 컨테이너에서 혼자 기타를 치고 있냐고?"

"너 처음 왔을 때 애들이랑 하는 얘기 들었다. 음악 했었다고?"

"네, 기타리스트였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내가 기타 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건 아니지?"

"여기 직원들은 들어도 이해도 못하는 걸요. 그냥 예전에 알던.."

"알던?"

"음반사에서 일하는 친구한테.."

노인의 표정이 무서워졌다.

"저.." 노인은 컨테이너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기타를 들고 나왔다.

"잘 봐." 노인은 두 손으로 기타를 꽉 쥐고 바닥에 내려쳤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있었다. 노인은 부러진 기타를 쓰레기 더미 위로 던져놓고선 홀가분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별거 아니지?"

"네?"

"별거 아니라고. 내가 기타 치는 이유."

"..."

"내가 누구 들으라고 치는 줄 알아?" 노인이 갑자기 화를 냈다.

"내가 누구 들으라고 치는 줄 알아!"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꺼져!"


나는 집에 돌아온 후 한쪽 구석에 쑤셔놓았다 꺼내 놓아 이제는 거실에 자리 잡은 기타를 잡아들었다. 방금 전 노인의 샤우팅이 잊히지 않았다. 나는 가장 좋아했던 곡을 연주했다. 기억이 흐릿해 틀리는 부분도 많았지만 즐거웠다. 아주 오랜만에 기타를 치는 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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