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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Jan 10. 2019

살아 숨 쉬는 혁신창업의 열정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 BBF(BILBAO BERRIKUNTZA 팩토리)

지난 10월초 스페인 빌바오에 다녀왔다.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Global Social Economy Forum)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Gsef는 2013년 서울을 시작으로 세계 주요 도시의 시장과 국제기구 대표, 사회적 경제 분야의 활동가들이 2년에 한 번씩 모여 교류하는 무대. 서울(1·2회)과 퀘벡(3회)에 이어 네 번째. 개인적으로도 기회만 생긴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세계 최대 노동자협동조합인 몬드라곤1)이 있어 사회적 경제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자, 빌바오 효과(Bibao Effect) 2)라 불릴 정도로 도시재생의 메카가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몬드라곤은 그냥 머물러 있지 않았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 나가고 있었다.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MTA도 그 과정의 산물이다. 노동인민금고(Caja Laboral)에서부터 사이올란(Saiolan), 그리고 MTA에 이르기까지 협동조합의 기본가치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인재육성과 혁신창업에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빌바오 예전 공장을 리모델링한 허르슴한 건물, MTA BB팩토리3)에서는 기존 학교 어디에서도 접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혁신창업의 열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1)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Mondragon Cooperation Corperative).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 기반한 몬드라곤은 257개의 기업, 조합에서 7만4,000여 명의 조합원이 일하는 연합체. 2013년 기준으로 총자산은 40조 원, 총수입은 15조 원. 웬만한 대기업 수준이다. 스페인 기업 중 TOP 10에 들 정도다. 흔히 ‘해고 없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2) 빌바오효과란 문화가 도시에 미치는 영향이나 현상을 뜻한다. 쇠퇴해가던 스페인의 지방공업도시 빌바오가 1997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시설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여 경제적 부흥을 가져온 데서 비롯된 용어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매년 1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방문하며 2007년 기준, 2조1,000억 원에 이르는 경제 효과를 이뤄냈다.


3) BBF : BILBAO BERRIKUNTZA의 약자로 보통 BB팩토리로 불린다.



빌바오 MTA(Mondraon Team Academy),
BB팩토리를 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Talk, Drink, Connect’란 슬로건에 눈길이 머문다. 빌바오에서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를 운영 중인 BB팩토리이다. 몬드라곤 대학 로고가 아니라면 밖에서 보면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아담한 카페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네르비온 강변에 있던 예전 공장을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시 소유의 건물을 10년 장기무상으로 임대받아 몬드라곤 대학과 이닛그룹(Grupo Init)이 함께 시설과 프로그램을 세팅, 2013년 마침내 문을 연 것이다. 당시 빌바오시 당국의 대학 유치 욕구와 몬드라곤의 혁신인재 육성이란 코드가 잘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3층 건물인 BB팩토리 안으로 들어가니 족히 3백 평 가까운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3층은 선배(
Score Up)기업과 스타트업 중심의 기업입주 공간이다, 평균 20~30명이 근무하는 다양한 업종의 사업체가 유리문 사이로 보인다. 바로 밑 2층에 MTA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혁신창업교육 LEINN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1층은 이들 선배기업과 LEINN의 교류와 소통을 촉진하기 위한 공유공간, 카페테리아가 있다. 안내를 맡은 팀 코치 존(John)은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창업과 함께 성장을 위한 시너지를 창출하는 빌바오혁신센터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여기”라며 “이탈리아 파스타 라자냐를 떠올려 보라”고 너스레를 떤다.

성수밸리나 혁신파크가 이미 주목받기 시작한 마당에 하드웨어 자체는 우리나라와 그리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BB팩토리가 훨씬 어수룩하고 허름해 보인다. 4)


4) 빌바오 도심 골목을 다니며 눈으로 본 주상복합 건물 1층 매장 입구는 업종을 불문하고 정말 작고 아담하기만 하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규모가 장난 아니다. 스페인, 특히 바스크 지역이 치장보다는 내실, 검박해 보이지만 부유하다는 가이드 말을 몇 번이나 실감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MTA LEINN 프로그램


하지만 MTA 교육방식은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리더십(Leadership),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혁신(Innovation)이 융합된 학부과정 LEINN이 대표적이다. 지난 1993년 핀란드 유바스 칼라Jyvaskyla 대학에서 처음 시작된 팀 학습 방식의 경영수업 TA(Tiimi Akatemia)를 몬드라곤에서 벤치 마킹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정착시켰다.


학생은 없고 팀 프러너Teampreneur가 있다. 교실은 없고,  
24시간 개방된 사무실Open Plan Office이 있다.  
가르침은 없고, 배움은 있다. 선생은 없고, 팀 코치가 있다.  
시뮬레이션 대신, 실제 비즈니스를 실행한다.  
학습자들을 통제하는 대신,  
스스로 자신을 조직할 수 있도록 한다.



MTA는 2007년부터 몬드라곤 경영학부에서 시작했고, 2009년에는 LEINN이 개설됐다. 15명 안팎으로 팀을 이뤄 4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창업하고 경영하는 방법을 배우는 혁신교육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이곳에는 학생이나 교수가 없다. 당연히 교실도, 수업도, 시험도 없다. 대신 학습팀과 코치가 있고, 실제 회사를 설립해 고객을 만나는 것이 교육과정이다. 모의 창업이 아닌 실제 회사를 만들고 운영한다. 배정된 코치는 학생들에게 고객 및 수익률 관리 등을 조언하는 게 교육내용의 전부이다. 

코치들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해서 대부분 오랜 교육 경험을 가진 사람과 사회 경험을 가진 사람이 섞여 있다. 하지만 이들도 코치가 되어 가장 어려운 점은 자신들의 기존 방식을 버리는 것이며, 현재도 기존의 방식을 버리는 과정에 있다. 코치를 뽑을 때도 얼마나 이 교육방식에 공감하고, 열정이 있는지가 최우선이다. 

LEINN 프로그램의 목표는 팀프러너(Teampreneur)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사업은 팀 단위로 진행해야 한다. 각 팀은 알아서 자금을 모으고 사업을 진행하고 수익을 서로 배분하게 된다. 졸업할 때까지 100여 개의 프로젝트를 팀으로 진행하며, 사업 아이디어 개발에서 생산, 마케팅, 판매, 세금계산서 발행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한다. 팀프러너들은 스페인, 핀란드, 샌프란시스코, 중국, 인도, 한국 등을 돌아다니면서 비즈니스를 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교육을 다 받은 후 창업하는 것이 아니라, LEINN 과정 내내 사업을 하고 실패하고 또 다른 사업하기를 반복한다. 굳이 우리 표현으로 치자면 ‘先창업, 後교육’의 훈련이랄까. 

몬드라곤의 경우, 핀란드와는 다르게 1~2학년 때는 수학이나 회계처럼 경영기초과목에 대한 수업이 진행된다. 물론 기존의 강의식 수업은 아니고 자기주도형 수업방식이다. 이는 핀란드와 스페인의 기초교육 과정의 차이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몬드라곤의 현실을 생각해서 경영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리고 실제 창업을 해야 해서 BB팩토리처럼 MTA 캠퍼스에는 강의실은 없으며, 모두 창업팀 사무실과 코워킹 공간 등이 있고, 일부 유망기업들도 입주해 있다. 

학점은 코치 평가뿐만 아니라 동료 평가에도 크게 좌우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하는 평가는 매출. 따라서 정해진 매출을 넘기지 못하면 유급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졸업한 학생들은 LEINN 과정에서 창업한 기업을 계속 이어가기도 한다. 창업을 위한 자금도 학생들이 직접 마련해야 하는데 주로 대학에서 주선하여 융자를 받는다. 융자는 모두 자기 책임 하에 상환해야 한다는 게 LEINN 프로그램의 취지이다.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고 기업가로서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바스크어로 Why not?이라는 뜻을 가진 Tzbz라는 협동조합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BB팩토리 1기 졸업생 중 하나는 “내가 기억하는 MTA는 실패를 포함해 모든 것을 배운 과정”이었다고 피력하기도.

2013년 LEINN의 첫 졸업생들이 배출되었고 지금껏 55%가 창업, 97%가 일자리를 찾았다. 2014년 기준 24개의 회사가 만들어져서 운영 중이다. 특히 2016년 시작된 LEINN International(4년제 유럽 공식 학사학위 프로그램) 과정에서는 국적과 언어를 불문하고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동료들이 함께 팀을 이루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22개 캠퍼스로 늘어나기까지 했다. 

BB팩토리도 빌바오에 터를 잡은 지 5년이 되었다. 스스로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4명의 학생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11개의 혁신기업, 런칭 단계에 있는 30여 개의 프로젝트, 50개 이상의 기업과 150명의 팀프러너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같은 목적과 가치로 커넥션을 만들어낸 결과되레 규모가 커지면서 초심이 흐려지는 경향을 우려할 정도란다. 

몬드라곤의 MTA에서의 경험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무수하게 진행되는 우리나라 창업교육과 무엇이 다른지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벽면 현황표엔 ‘MTA서울’도 보인다. 올해부터 4년제 학사학위 프로그램인 LEINN Seoul이 HBM(해피브릿지몬드라곤연구소) 주관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진행되었다. 

BB팩토리 방문 때 만났던 우리나라 청년들도 그 나름대로 인상적이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세 명 모두 학교 교육시스템에 대한 회의나 세월호 등 사회문제에 대한 자각으로 MTA에 참여했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교육시스템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해 보였다.



몬드라곤,
그리고 MTA가 추구하는 것들


MTA 탄생에는 몬드라곤의 기업가정신이 밑바탕을 이룬다. 스페인 내전 이후 피폐한 바스크를 살리기 위해 호세 마리아 신부와 그 제자들이 만든 울고ULGOR협동조합을 시작으로 오늘날의 몬드라곤 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한결같이 강조해온 기술습득을 통한 젊은 인재 양성이 바로 그것이다. 몬드라곤 대학은 줄곧 그 산파 역할을 맡아 왔다.

하지만 2008년 경제위기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으로 몬드라곤은 다시금 변화의 바람을 맞게 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이전까지의 성공사례가 처참한 실패로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몬드라곤에는 또다시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새로운 방식들은 근본적으로 협동조합의 기본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핀란드 팀 학습 방식의 경영수업 TA가 도입되었고,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MTA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비록 파고르의 파산5)을 막기까지는 역부족이었지만, MTA를 통해 배출되는 젊은 기업가들이 몬드라곤의 혁신을 다시 이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를 안내한 MTA BB팩토리 팀 코치 존은 “특히 2018년 10주년을 맞아 다시 혁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운을 떼면서 “MTA도 곧 인터넷 LEINN 과정을 개설할 예정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있는 많은 동료들이 참여하도록 지구적 창업지원 네트워크로 진화해 갈 계획”이라며 기대 어린 포부를 밝혔다.


5) 2008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 파고르전자는 매출이 급감하고 자본난을 겪게 된다. 인원 감축과 급여 삭감, 몬드라곤의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2013년 결국 파산하고 만다. 당시 실직 위기에 있던 1,800명 조합원을 몬드라곤 내 재배치와 80% 급여 지원을 통해 서서히 해결해 가면서 몬드라곤이더 탄탄해지는 밑거름이 된다.



사족(蛇足) 같은 이야기

제주에서도 ‘더 큰 내일센터’가 설립될 예정이다. 이참에 HBM해피브릿지몬드라곤연구소과 연계해서 MTA제주 LEINN 과정을 개설하는 건 어떨까 싶다.







*본 게시글은 2018년 J-CONNECT 겨울호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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