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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Apr 29. 2019

전문가 대담,
제주 농업 혁신의 현재와 미래

전정환 센터장, 안경아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홍창욱 농업디자이너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이자 농업경제학 박사 안경아, 제주 농산물 정기 배송 프로그램이자 마을 기업인 무릉외갓집 운영자로 활동하다가 지속 가능한 제주 농업을 궁리하며 최근 공심채농업회사법인을 시작한 농업 디자이너 홍창욱, 그리고 전정환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주 농업의 어제와 오늘, 내일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 제주라는 지역적 특성이 맞물리며 조성된 농업 구조부터 환경 변화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와 이에 대한 대응, 최근 들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젊고 참신하며 유능한 농업 인재와 관련 혁신 사례를 짚어보았다. 담론의 마지막은 제주 농업이 나아갈 길, 농업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닿는다.


전정환 센터장(이하 전정환)    안경아 연구원께서는 제주 농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 등 전체적인 상황을 죽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50년간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해갈지 정리해주시겠습니까?


안경아 책임연구원(이하 안경아)  제주대 유영봉 교수님이 연구책임자로 진행한 보고서 <제주특별자치도 2019-2023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참고하면, 제주 농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1960~1970년대 제주의 주요 재배 작물은 감귤이 아닌, 고구마와 감자 등 서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제주는 논(농사)이 안 되니까 밭작물인 서류를 재배했는데요. 고구마 등은 공업 원료로 활용하기 위해 생산했고, 1970년대 후반 정부가 고구마 전분 수입을 확대하면서 고구마 생산량은 줄어들었습니다. 감귤이 확대된 시기는 1960년대부터입니다. 당시 재일교포들이 감귤 묘목을 제주에 기증하면서 감귤원이 확대된 것이었지요. 정부 차원에서 감귤증산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지원을 확대한 결과, 1965년 551ha에 불과하던 감귤원이 1980년 1만4095ha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감귤이 ‘대학나무’ 라는 별칭을 얻게 된 시기가 이때예요. 수익성을 보장하던 감귤은 1990년대에 이르러 공급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2000년 약 2만6000ha로 정점에 이르자 구조 조정에 들어갑니다. 구조 조정은 두 방향으로 일어났어요. 하나는 노지온주 감귤 면적을 줄이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연중 생산 체계로 바꾼 것이었죠. 당시에 한라봉 등 만감류 재배가 확대됩니다. 정부에서는 FTA 기금 사업으로 감귤 연중 생산에 필요한 비닐하우스 설치를 지원했어요. 10여 년간의 구조조정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감귤원 규모는 약 2만ha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정환    용어 정리가 필요할 듯한데, 만감류와 노지 감귤은 어떻게 다른 건지요?


안경아    만감류는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 만생종 감귤류를 말하는데, 호온성 작물이라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요. 기술과 연결되어 있죠. 감귤 연중 생산 체계는 기술 혁신과 정부 지원을 통해서 2010년경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것이 현재로 이어지고 있고요. 가격 변동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품목은 노지 감귤입니다. 제주의 전체 경지 면적은 약 6만2000ha이고, 여기서 약 2만ha는 감귤로 유지됩니다. 제주 농업 조수입(매출액)은 약 1조 6000억 원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금액으로 말할 수 없어요. 

안경아 책임연구원

이에 연관 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그해 감귤 가격은 감귤 따는 할머니들의 일당부터 물류비, 선과장의 근로자 임금 등 지역 경제에 향을 줍니다. 관광객이 호텔이나 골프장에서 소비하고, 여기서 수익이 분배되는 구조와는 다르죠. 제주 사람들이 감귤 가격에 민감한 이유를 그저 감귤 농가의 패권으로 여긴다면 이를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감귤 산업과 연관된 지역 경제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노지 감귤은 재배 면적이 줄어들 것입니다. 반면, 만감류, 하우스 감귤, 월동 감귤 재배 면적은 약 5000ha인데, 여기에는 ICT 기술 도입이 시급합니다. 토마토, 참외 등 과채류 농장에 접목된 ICT는 육지에서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감귤 농장에 접목할 기술 개발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제주와 육지의 기술 격차에 대한 대응도 요구됩니다. 기술 측면에서 제주 농업에 적용 가능한 자체 개발이 중요해요. 이것이 인재 문제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전정환    과거 감귤 산업의 성장기와 고도화가 필요한 현재에 대해서 짚어주셨어요. 제가 얼마 전에 양승훈 작가의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읽었는데, 영화와 드라마로 선보인 <땐뽀걸스>의 배경인 거제와 중공업을 조명하는 이야기예요. 그 책에서 지역 경제를 이끌던 조선업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면서 지역의 기반 경제가 흔들리고, 그에 따른 지역주민의 삶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다루죠. 저는 이 모습이 우리나라 지방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지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역 고유의 구조와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려야 할 농업의 미래상에 대해서 홍창욱 농업 디자이너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제주 출신이 아니면서 제주 농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죠. 제주 농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홍창욱 농업 디자이너(이하 홍창욱)    작년에 제주의 농업인 10명을 만나 30년 뒤 제주 농업은 어떨지를 물어봤어요. 10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농업에 들어가는 외부 투입에 대한 요소의 가격이 굉장히 오른 것을 확인했죠. 발생하는 비용을 봤을 때 생산가격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에요. 10년 전에 비해서

홍창욱 농업디자이너

 소득이 늘었을지 몰라도 쓰는 돈 역시 규모가 커졌으니 실질적인 농업 소득 자체는 줄어든 거예요. 농사짓는 게 어려워졌다는 뜻이기도 하죠. 이를 만회하는 방법으론 뭐가 있을까요? 다소 뻔한 소리지만, 농지를 늘려서 규모화하는 방법밖에는 없어요. 지난 10년, 20년 동안 농사짓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그거예요.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이 흘렀을 때를 생각해보면, 규모화하는 것이 방법이 되겠지만, 농민 삶의 수준이 떨어진 상황에선 고민이 더욱 많아지죠. 농민 수가 줄기 때문에 농지를 개발하지 않는 이상 1인당 경작하는 평균 경작지는 늘어날 겁니다. 규모화는 더욱 필요해지고요. 남아 있는 고령의 농민은 농촌이나 지역 활성화 개발 사업에 따라, 이것이 잘 된다면 (농업이) 유지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농업을 버릴 수 있겠죠. 그럼에도 농업은 경험에 기인하는 생산 활동이기 때문에 농업을 유지하는 인력은 유지되긴 할 겁니다. 특히 감귤 같은 경우에는 소득이 높다기보다 농부의 경험상 농사짓기 좋은 작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농사를 유지할 확률이 높아요. 또 감귤 농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타지에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농업 전체가 줄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보는데, 여기서 제주의 강점을 살린다고 한다면 (앞으로) ‘근근이’ 유지되지 않을까요.


안경아    맞아요. 농업은 ‘근근이’ 유지되는, 다른 산업과는 다른 느린 듯 일정하게 지켜나가는 성질이 있어요.


전정환  감귤은 타지에서 재배하지 않는다는 점이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얼마 전 경남과 전남 등지에서 감귤 농사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났어요. 또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잠재적인 위협으론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를 고려한 타개 방안으론 무엇이 있을지요?


홍창욱    ‘공심채’ 프로젝트에 대해 간단히 말드리자면, 마을을 근거로 해서 지역 산물을 도외지 사람들에게 직거래하는 일이에요. 최근 몇 년 사이 제주에서 새로운 농산물이 자라는 걸 확인하고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농가에서는 주로 과일을 재배하잖아요. 채소 작물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분명히 있을 텐데, 그에 비해 많지 않다는 점에 착안한 거죠. 제주나 농촌의 경우 결혼 이주 여성이 많은 만큼 새로운 음식이나 맛에 대한 욕구가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 창업하게 됐죠. 그런데 농사를 지어보니 제주라고 해서 연중 따스한 게 아니고, 한라산이 있어서인지 어느 부분에서 공급되면, 한편으로 부족한 부분이 생겨요. 비닐하우스 시설 재배를 하더라도 비용을 투자하지 않으면 겨울까지 따뜻하게 만드는 게 쉽지 않아요. 공심채는 이제 갓 시험 재배를 시도한 수준이에요. 감귤의 경우 육지에서 하는 걸 보면 비닐하우스에서 시설을 다 갖춘 다음 생산되는 만감류 종류가 대부분이에요. 제주의 또 다른 장점이라면 월동 채소를 꼽을 수 있죠. 다른 시설 가공 없이도 밭에서 잘 나요. 제주는 ‘남들 안 나올 때 나오고, 남들 나올 때 좀 더 빨리 나와서’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요. 저는 육지(노지)에서 한라봉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감귤이 아니기 때문에, 감귤 전체 생산량을 제주에서 조절할 수 있다면 제주가 이를 위협 요소로 보고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제주가 점점 더워지고 있어서 그에 따라 맛에 대한 선호도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부분 역시 품종으로 극복할 수 있을 듯하고요.


안경아    제주는 평균기온이 높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이상기후가 발생하고 있죠. 그렇게 되면 농가의 생산 비용이 늘어나게 돼요. 가령 예전에는 눈이 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눈이 많이 와서 기온이 떨어지기도 하고, 높아지기도 하죠. 이상기후 때문에 장기적인 플랜과 기간을 두고 생산 작물을 결정하는 농가에선 쉽사리 작물을 변경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비용 문제로 연결돼요. 온풍기나 에어컨, 스프링클러 등의 설치가 시급해지고, 농가에 부담을 주지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이 필요해요. 현재는 보급 사업, 즉 장치를 설치하는 부분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비용을 경감하는 제도를 실시하는 정도인데, 앞으로 기후변화에 대해 농가에서 발생하는 추가 생산 비용과 이를 누가 부담할지에 대해서 전격적인 기술 혁신의 비중이 커질 겁니다. 농업 또한 인재가 중요한 산업 분야예요. 젊은 사람이 꾸준히 농사짓는 것이 계속 이어져야 하죠. 남원에서 본 ‘메이커스 플레이스’가 좋은 사례입니다. 젊은 농부들이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장치를 만들고 있어요. 제주는 그동안 기술을 공급하는 곳과 적용하는 곳에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어요. 투자하는 곳과 개발하는 곳의 시간적 격차가 발생하기도 했고요. 제주의 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앞으로 발생할 비용을 줄이는 노력과 기술 혁신이 필요합니다.


전정환    제주의 겨울 채소, 특히 월동무는 가락시장에 나오는 상품 중 90% 이상이 제주산이라는 소식을 듣고 아주 놀랐어요. 아무래도 연중 온난한 기후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일 테죠. 두 분은 제주 작물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전정환 센터장


안경아    현재 농업 유통은 가락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가락시장에 전국의 농산물이 모였다가 다시 전국으로 흩어지는 형태죠. 물류 효율성을 위해 지역별로 주산단지를 육성하고, 대량생산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다양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오프라인 플랫폼에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직매장이 좋은 예시입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가까이서 만나는 모델을 여기서 찾을 수 있어요. 농민이 다양한 작물을 생산했는데, 상장 품목이 아니면 시장의 판로를 얻지 못해요. 현재의 농업 판매 구조가 그래요. 생산부터 소비까지 이미 결정되어 있죠. 이에 대한 혁신이 아주 절실합니다. 다양한 작물을 생산하고 싶은 생산자의 욕구가 있고, 다양한 작물을 소비하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의 유통 구조에서는 이를 충족시키키가 어렵죠. 그 대안으로 혁신적인 판로가 등장하고 있고요.




전정환    정리해보자면, 감귤 산업이 감귤 농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 얽힌 지역 경제의 구조를 포함하고 있고, 미래를 위한 대응으로 외연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농업과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해 향후 고령화와 기후변화 같은 요인을 고려했을 때 육지에서 만감류 생산이 이뤄지고 있고, 제주 역시 농가의 시설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 대응을 위해 인력 혁신에 주력할 시기라는 점을 다뤘고요. 또 작물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 기존 가락시장 중심의 유통 구조를 타파하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의 대안적인 판로 등장, 새로운 소비가 일어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 등 유통 혁신에 대해서도 더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생산 측면에서 듣다 보니 이상기후 등 환경문제가 불거지는 현실을 바로 인식하는 것이 제주에게는 기회로 삼을 만한 위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제주는 여러 작물을 연중 생산할 수 있다는 해석, 이를 위한 기술력 확보가 이루어진다면 제주 농업이 발전할 가능성으로 이어질 듯한데요.



홍창욱    제주는 토양부터 육지와는 다른 점이 많죠. 새로운 농업, 새로운 시도를 훨씬 많이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정환    새로운 기술력이 결합된, 제주의 가능성은 ‘융합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타트업 중심으로 정부가 구매하는 시스템, 농업 혁신가 기업의 아이디어 상품을 제주에서 구매하고, 이를 농가에 보급하면서 상생하고 성장하는 구조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네덜란드가 제주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IT 중심으로 융합한 농업 국가 사례가 되었잖아요. 농업을 주산업으로 하되 기술과 융합하는 비전을 갖는 제주를 상상하게 됩니다. 제주는 농업을 버릴 수 없는 곳이에요. 미래를 바꾸기 위해 기술 융합과 농민의 오픈 마인드, 일선의 혁신가가 적절히 안배되어야 하겠지요.


홍창욱    농업 하면 농사짓는 것만 생각하지만, 자본과 지원은 청년 농업은 물론 농업 자체를 키우는 문제로 연결됩니다. 농업 자체의 규모는 커졌지만, 거기 소요되는 자원이나 적정 기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지려면 5년에서 10년이 걸려요. 새로 유입된 인구라면 여기에 진입하기 힘든 구조인 거죠. 크게 50L 비료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 5L 정도만 써도 되는 작은 농사를 지향하는 기술을 새로 유입된 농민이나 농업 스타트업이 시도해보는 거죠. 저는 조경 분야야말로 농업으로 유입되어 서로 확장될 거라고 생각해요. 

홍창욱 농업디자이너

경은 광의적으로 보면 농업이지만, 조밀히 보면 농업이라기엔 디자인 요소가 큰 분야예요. 농업의 다원적 성격 중 경관이 주는 심미적인 요소가 있잖아요. 농업 스타트업 중 괜찮은 모델로 ‘팜프라’를 꼽을 수 있어요. 이 친구들은 농사지을 때 입는 옷을 디자인해서 팔아요. 농사짓는 사람이면 으레 일하면서 옷을 버리니까 아무렇게 대충 입잖아요. 하지만 여기에도 멋진 옷차림을 하고서 농사짓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가 있을 수 있죠. 저는 제주에도 팜프라와 같은 농업(주변의) 스타트업이 생겨나야 한다고 봐요. 농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제주에서 무언가를 시도하다가 떠나곤 해요. 농업에 관심 많은 젊은이도 거기 있었을 텐데, 지금 농사짓는다고 하면 7000만~8000만 원 하는 트랙터를 사야 하고, 땅은 3000평이 있어야 해요. 호미로 절대 할 수 없죠.(웃음) 그들이 농사짓는 모든 단계를 만들어가면서 스타트업으로 경험을 쌓고 수익을 내는 작은 단위의 농가가 생겨나면 다른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어요. 현재는 이러한 기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는 게 어려운 거예요. 창의적인 혁신이라는 건 기술 혁신처럼 이전의 무언가를 비트는 것일 수 있지만, 시장 규모를 조금씩 바꿔가는 것도 포함된다고 봐요. 젊은 귀농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이나 스타트업을 위한 접근 방법이 다양해져야 해요. 농업의 근본적인 생태계를 바꾸려면 농사에 관련된 투입 요소가 농사짓는 것과 농사지은 것의 20%를 가공하는 것까지, 농업 전반과 후반을 아우르는 과정이 탄탄하게 구조화되어야 결과적으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이 없겠죠.


전정환    앞에서 언급한 팜프라 같은 젊은 창업가가 제주의 농업 생태계에 새바람을 불어넣는다면, 이에 대해 다양한 인재가 모여 모델을 만들어낸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힘이 되겠네요. 전과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죠.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지원하느냐도 중요해졌어요. 제주는 청년 인재가 이주하고 싶어 하는 지역이라는 점은 분명히 강점입니다. 인재가 유입되고, 성공한 사례가 생겨나고, 행정이나 의회에서 여기 주목해서 지원한다면, 변화의 토대가 만들어져서 선순환이 일어나는 날을 꿈꿔볼 수 있겠네요. 이에 대해 안 연구원께서 직매장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안경아    로컬 푸드 직매장을 만들고, 해당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거예요. 

안경아 책임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은미 연구위원의 보고서 

<제주 로컬푸드 육성·지원 종합계획 수립>을 보면 관광객과 도민을 합쳐 제주 지역의 먹거리 내수 소비 규모가 약 1조원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자급률이 약 12.5% 정도입니다. 그 이유는 생산 품목이 한정적이기 때문이죠. 제주는 감귤과 월동 채소를 주로 재배하면서 ‘선택과 집중’의 방법으로 작목 생산의 경쟁력을 확보해왔어요.



전정환    그렇다면 내수 농작물은 몇 퍼센트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안경아  완주의 로컬 푸드 직매장 담당자에 의하면 주변 대형마트 식품 코너에 지역에서 난 농산물을 공급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해요. 제주에서 적용하는 경우 식재료를 로컬 푸드로 대체할 수 있는 셈이죠.  제주는 연중 생산이 가능하니까요. 이렇게 구조를 차츰 만들어가야죠.


전정환    생산 측면에서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가요?


안경아    작물 생산보다 판로 선택에서 지원이나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봅니다. 농민이 작물을 결정할 때는 판로를 염두에 두고 선택해요. 밭에 어떤 작물을 키우고, 어디에 팔까 생각하는 것이죠. 제주의 경우 감귤류와 월동 채소는 판로가 결정되어 있어요. 다른 작물을 시도했다가 판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으니까 판로부터 결정하고, 작물을 선택하는 것이죠.


전정환    유통을 담당하는 기업과도 연관이 있는 부분이군요.


안경아    직매장이 있으면 농민이 납품하는 품목을 우선 계약하고 시작할 수 있게 돼요. 만약 200호의 농가에서 직매장에 납품하는 경우 농민은 어떤 작물을, 얼마만큼 공급할 것인지 계약해요. 기획이 이렇게 이뤄지면 직매장에서는 연중 공급 품목이 정해지죠. 농가는 판매처가 생겼으니 여기에 맞춰 생산하게 되고요. 농업 조수입 1조 6000억 원 중 약 20%인 3200억 원을 지역 유통망을 통해 소비하게 된다면, 제주 농가 수 약 3만2000호는 단순 계산으로 농가당 연간 1000만 원을 지역 유통망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됩니다.


홍창욱    이것이 어려운 게 농민이 스스로 본인의 길을 결정하고서 나아가는 방식이잖아요. 직매장이 있으면 한층 쉬워질 수 있죠. 제주 농민들이 어떤 사람들인데요. 기본적으로 부지런해요. 택배나 직거래를 계속해왔고, 타지에 비해 적다고는 하지만, 오래전부터 직거래해온 농민이 훨씬 많아요.


전정환    사람들의 소비 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을 반하지 않으면 브랜드는 외면받는 게 현실이죠. 더욱이 요즘 소비자는 가치 중심의 소비를 하잖아요. 크라우드 펀딩이 대세가 된 이유가 그렇고요. 새로운 판로의 가능성이 나타나는 곳 역시 제주이죠. 센터의 보육기업 몇 곳이 와디즈를 통해 며칠 만에 3억 원을 모으는 걸 보면서 놀랐어요. 그런 면에서 홍창욱 선생은 공심채로 성공의 경험이 있고, 다른 사례를 보면서 판로 혁신의 가능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홍창욱    처음 공심채를 구매한 소비자가 향후 공심채의 팬이 될 방법은 뭘까 고민합니다. 지역 내에서 펀딩을 기획한다면, 앞으로 공심채가 기획 업무를 할 수 있고, 공심채가 사회적기업을 인터뷰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또 좋은 제품에 대해 알리고 공감하는 지역의 평판이 중요해요. 모델이 잘 잡힌다면 다른 지역에서 평판 시스템을 통해 검증받고 싶어할 거고요. 다양한 조력자와 파트너를 만나면, 수익도 수익이지만 초심이 흐려질 때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겠죠.



전정환    ‘당신의과수원’의 경우는 오성훈 대표가 자금에 대해 고민하다가 시도한 사례예요. 연말에 농협이 수매하는 과정을 따라 일하면 결국 대출을 받아야 하고, 나중에는 정말 남는 것이 없었다고 해요. 그렇다면 선판매를 해볼까, 생각한 거죠. 지인과 SNS를 통해서 팔았는데, 그게 성공한 거예요. 펀딩은 아니었지만, 선판매를 해보니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사업, 숙박업과 연결하는 것까지 방법이 한층 넓어졌다더군요. 센터 입주기업이 되었고요. 판로나 자금을 미리 확보해서 혁신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안경아    ‘농어촌진흥기금’이 있는데, 저리 융자금을 지원하는 제도예요. 농법인 같은 경우 10억, 최대 20억까지 대출이 가능해요. 그런데 대출 여부의 최종 심사는 은행이 담당해요. 마지막 단계에서 한도 심사를 하면 대부분 감액되는 것이죠. 신용, 담보 등을 기준으로 심사하기 때문이에요.


전정환    청년 기업가가 혁신적인 시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네요.


안경아    그렇죠. 평균 대출 금액이 3억5000만 원 정도예요. ‘농식품펀드’라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제도가 있는데, 최하 7억 원을 대출해줍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농식품 기업이 자본 위기에 몰려 도산하는 것을 막고자 만든 제도예요. 사례집에서 확인해보니 달걀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우 생산 투자를 받았고,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하지만 자금이 돌지 않아서 사업을 못하고 있다가 10억 원을 대출받았어요. 이때 닭을 담보로 투자가 결정된 것이었죠. 만약 금융권이 심사했으면 불가했을 텐데, 펀드라서 가능했어요.


전정환    제주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나요?


안경아    도내 6개 기업에서 15건 지원받은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대부분은 식품 기업이에요. 지금까지 농업 분야 투자는 융자 방식의 소규모 지원이 대부분이었어요. 앞으로는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다각적인 시야가 절실합니다. 매해 반복되는 월동 채소 가격 폭락과 물류비 부담이 중요한 이슈죠. 제주 농업이 갖는 생산 기능과 경관 기능, 정서적 기능, 소비자에게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믿음까지, 농업이 가진 다기능을 재고해야 합니다. 제주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이 높고, 농가 소득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농민들이 새로운 판로를 궁리하고 있고, 유통 혁신이 농업 신에서 일어나고 있죠. 농민은 단지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기능을 생산하는 생산 주체라는 인식이 필요해요. 농민이 생산하는 기능에 대한 사회적 보상 또한 중요하고요. 이런 기능을 비즈니스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겠고요. 지금은 기회를 포착하는 게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홍창욱    농산물과 물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에요. 지역과도 뗄 수 없고요. 중앙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중앙에 모다가 흩어지는 게 빠르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운영해온 건데, 지역 산물에 대한 물류 구분 문제가 해결된다면 로컬 푸드에 관련된 문제도 해결하기 훨씬 쉬울 겁니다. 기반을 만드는 일을 스타트업, 특히 유통 분야에서 시작하면 좋겠다고 보는데, 당신의과수원이나 무릉외갓집이 그런 선례가 되겠죠. 농업에 애착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한 작업이 될 거예요. 미디어 분야에서 농업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면, 농업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전정환    제주의 농업 혁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최근 불거진 제주도의 펀드 이슈와 마찰을 상기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이슈 또한 긍정적인 작용이라고 봅니다.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방법과 변화를 감지했다는 증거죠. 목소리를 내고, 건강한 충돌을 일으키는 작용의 기운이 넘실대고 있어요. 제주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빨리 그런 양상이 나타나고 있죠. 지금이야말로 이런 담론, 다양한 사람을 포용하는 생각의 체계를 다질 때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향이 생겨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변화가 자연스럽게 확장되기를 기대합니다. 함께해주신 두 분 정말 고맙습니다.  





*J-CONNECT 2019년 봄호(Vol.9)내용을 온라인에 맞춰 수정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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