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마을 홍동우
[요즘 교육 혁신가들] 게임의 몰입감을 적용해 차원이 다른 학습으로 빠져드는가 하면, 지역 청년 스스로 지역을 자원 삼아 창업이나 다른 활동을 위한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강남 대치동의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명문대 교사에게 지도받는 채널이 등장했다. 좋아하는 일을 다른 이와 공유하는 취미 학습 플랫폼의 출현 역시 100세 시대에 맞는 '평생 교육'의 행보다.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보수적이기로 알아주는 교육 패러다임에 혁신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이 일순간에 풀리는 한마디. “괜찮아.”
이름으로 위로가 시작되는 이곳, 괜찮아마을은 지치고 마음이 아픈 청년들에게 쉬면서 무엇이든 상상하고 꿈을 위해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쉬면서 일하는 마을’을 표방하는 괜찮아마을은 목포역 인근 원도심에 자리한다. 1960~1970년대 분위기가 압도하는 이곳은 오랜 여관인 우진장을 중심으로, 1년여의 준비 끝에 탄생했다. 흔히 마을이라고 하면 마을회관이나 리 사무소를 중심으로 가옥이 옹기종기 모인 풍경을 떠올리지만, 괜찮아마을은 전형적인 이미지를 모두 비켜간다. 홍동우 대표에 따르면 실제로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들 대부분은 원도심의 빈집이나 가격이 싼 변두리의 집에서 사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청년들이 생존을 위해 지역의 빈집을 찾아서 거기에 스며들어서 살아가죠. 제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왜 목포였느냐 하는 것이에요. 정말 우연이었어요. 한때 치앙마이에 만들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곳이 참 살기 좋거든요. 덥지만 습하지 않고, 물가가 싸고요. 쉴 곳을 찾을 만큼 지친 사람들이 그 멀리 치앙마이에 올 힘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러다가 목포에 오게 됐어요. 도시 재생 일환으로 비어 있는 지역 자원을 활용할 수 있을 테고, 청년 사망 원인 1위이자 OECD 국가 자살률 1위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홍동우 대표는 괜찮아마을에 살기 전 여행자로 지냈다. 세계 각국을 여행했고, 작가로 활동했다. 한때 공유경제와 관련한 사업을 했는데,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익스퍼루트라는 전국 일주 여행사를 운영했다. 여행사를 통해 1300명에 가까운 청년을 만난 홍동우 대표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청년들은 힘들어서, 힘든 걸 말하고 싶어서 여행을 온 것이었어요. 3년 가까이 접해보니 돌아다니는 여행 대신 공간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회복하는 시간을 제공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익스퍼루트를 멈추고 전 재산을 털어 제주에 한량유치원이라는 팝업 게스트하우스를 열었어요. 56일간 숙소를 빌렸는데, 놀랍게도 700박 가까이 숙박을 받은 거예요. 엄청난 성공이었죠. 기쁜 한편으론 사람들에게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그런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청년들이 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동시에 다른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보기로 한 거죠. 기왕이면 마을 형태가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괜찮아마을에서 홍동우 대표는 딱 하나, 서로 존댓말을 쓴다는 원칙을 세웠다. 나이나 사회적 지위로 위계질서가 형성되지 않게끔 수평적 문화가 뿌리내린 커뮤니티가 되기를 바랐다. 괜찮아마을에서 지내는 청년 구성원의 관계는 물론이고, 지역과 청년의 관계에 대해서도 숙고한다. 시혜적인 태도를 경계하는 괜찮아마을의 핵심은 유휴 자원을 활용해서 청년들에게 괜찮아질 수 있는, 쉬어갈 수 있는 품을 제공하는 데 있다.
청년들은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동원된 객체가 아닐뿐더러 청년 개인이 자신을 위해 찾아왔다는 점을 동력 삼으며 그들의 정착을 지원한다. “사실은 그저 재미있었으면 했어요. 우리가 도시 재생 사업의 흐름에 편승해서 지역에 벽화를 그려야지, 어르신들하고 같이 잔치를 벌여야지, 하고 의도했으면 청년들은 재미없어서 다 떠나지 않았을까요. 청년들에게 정당하게 인건비를 지급하고, 그들이 지역에서 봉사가 아니라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지역과 청년의 접점을 말할 때 저는 그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교통안전 교육이 상당히 이뤄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20대에 자살로 죽는 청년이 교통사고로 죽는 청년보다 3배 많아요. 30대는 5배가 넘고요. 이제는 부모님들이 타지에 있는 자식에게 차 조심하라고 할 게 아니라 자살하지 말라고, 죽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 시대인 거죠. 이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전해야 하고요.”
홍동우 대표는 괜찮아마을을 통해 청년들이 괜찮아지는 모습을 목격했고, 어쩌면 이들이 여기에서 대안 사회를 이루며, 지속적으로 괜찮아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놓지 않는다. 요즘 청년들이 갖는 ‘괜찮지 않음’의 원인은 기존의 사회 시스템과 체질상 맞지 않았던 탓이지, 청년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모르거나 배제한 채 사는 게 아니에요. 그걸 안다고 해도 꼭 그것이 우선하는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죠. 보편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보통 청년들이 이곳에 와서 좀 괜찮아졌으면 좋겠어요.”
괜찮아마을은 2018년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공간 활성화 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돼 용역 사업비 6억 6000만 원을 확보했으며, 기존 프로그램을 재정비해 지난 8월에는 6주 과정의 신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전국의 청년들이 목포에서 편하게 쉴 수 있는 프로그램과 인생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이뤄졌다. 괜찮아마을은 이제 청춘 스스로가 치유할 수 있는 안식처로 자리 잡았으며, 목포 원도심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배낭여행 축제 ‘히치하이킹 페스티벌’을 개최했으며, 근대 문화유산의 보고인 목포 구도심과 우리나라 섬을 알리는 정기 간행물 <매거진 섬>을 펴냈다. 지역 상품을 리패키징해 브랜드를 만들고, 팝업 식당을 여는 것은 물론 지역의 이야기를 모아 노래와 연극 등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났어도 마을에 남은 이들이 배턴을 넘겨받아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주식회사 공장공장은 괜찮아마을을 만든 회사입니다. 공장공장과 더불어 괜찮아마을에 청년들이 안전하면서 편하고 깔끔한 곳에서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우리끼리 재미있는 일을 많이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먹고살 수 있는 수익을 만들지 궁리합니다. 괜찮아마을 안에 ‘공장공장’을 비롯해 채식 식당 ‘최소 한끼’, 마음을 치유하는 ‘세심사’ 외에 여러 형태의 경제 공동체가 생겨나면 더 많은 청년이 마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재능과 지식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적정 수준의 돈을 벌 수 있는 대안 공동체 괜찮아마을은 독특함과 개성을 갖춘, 특히 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로 개발되었다는 전무후무한 아이덴티티를 장착한 도시 재생 프로그램이자 이 시대 청년을 위한 교육 혁신 모델로 교육계와 지역에 새 숨을 불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