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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Aug 03. 2020

가업을 잇다
미래를 잇다-삼진어묵

아버지의 어묵을 크로켓으로 만들어 베이커리화하고, 할아버지 때부터 손수 빚은 막걸리의 제조 과정을 체계화해 최신식 설비로 고른 품질의 맛을 제공한다. 자수 공장 딸은 직접 개발한 패턴에 아버지의 손을 빌려 수를 놓는다. 오랜 세월 다져온 묵직한 내공과 섬세한 기술력에 젊은 세대의 재기 발랄함을 더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자세로 가업을 이끌어가는 도외 3개 브랜드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삼진어묵은 1953년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온 장수 기업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어묵을 만들었고, 1986년에 창업주의 아들 박종수 대표가 대를 이어 전통시장 판로를 넓혔다. 부산 어묵업체 중 상당수가 전통시장 중심의 B2B로 운영했지만 어묵 가격과 상품성 측면에서 큰 변별력이 없어 어묵시장이 침체기를 겪던 중, 2011년 삼진어묵의 3대 박용준 대표가 본격적으로 가업에 뛰어들었다. 그이는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삼진어묵을 브랜딩해 B2C로 시장을 확대했다. 어묵을 크로켓으로 만들어 베이커리화하고, 제조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오픈 키친 형태의 매장을 열었다. 2013년에 시작한 어묵 베이커리 사업은 전국에 삼진어묵 열풍을 일으켰고, 더 이상 반찬용 어묵이 아닌 프리미엄 간식으로 격을 높였다. 그해 82억의 매출을 올렸고, 최근 삼진어묵의 매출액은 980억에 달한다(2019년 기준).



회계사를 꿈꾸다 가업을 잇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미국 유학 시절, 공장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설립하고 아버지가 이어받은 가업을 이대로 포기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당시 어묵업계를 분석하고 영업, 제조까지 직접 경험해보며 어떤 점을 보완하고 변화시켜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이후 2011년에 본격적으로 업무에 참여해 어묵 포장부터 반죽 배합, 생산 라인 가동 시스템 등 공장 내에서 이루어지는 어묵 제조 공정을 보고 배우며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첫걸음이 어묵 베이커리였지요. 어묵을 크로켓으로 만들어 베이커리처럼 판매한다는 콘셉트가 획기적이었습니다.
‘소비자는 어묵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묵이 어떤 형태를 띠어야 좋아할까’, ‘어묵을 구매하는 곳은 어떤 매장이 되어야 할까’ 등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니 답이 나왔습니다. 은밀하게만 느껴지던 어묵 제조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오픈 키친 형태의 어묵 베이커리 매장을 열었죠. 또 빵처럼 먹을 수 있는 어묵 크로켓을 개발했습니다. ‘어묵이 간식처럼 느껴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는데, 임직원 식사용 돈가스를 튀기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이후 어묵 크로켓을 만들었고, 메뉴로 출시했습니다.


2019년 삼진어묵이 가업 승계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꽤 파격적인 행보입니다.

취임 후 10년간 삼진어묵이 10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그에 따라 회사 규모도 커졌고,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주위에서 “회사 대표직을 내려놓으니 아쉽지 않냐”고 많이 묻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삼진어묵을 위한 일이니까요. 경영을 고집하기보다는 기업의 철학과 가치를 승계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회사의 성장을 도울 겁니다. 현재는 해외시장 토대 마련을 위해 만든 ‘삼진인터내셔널’ 해외 총괄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나 역량을 펼치기에는 현재의 자리가 적합한 듯합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삼진어묵의 미래를 그려놓았습니다. 바로 ‘어묵의 세계화’입니다. 한국의 어묵 문화를 세계적으로 대중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2년 전, 어묵 문화가 자리 잡은 싱가포르, 필리핀, 홍콩 등 동남아시아로 진출했습니다. 해외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제는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다시 해외시장을 공략할 겁니다.


‘소비자는 어묵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묵이 어떤 형태를 띠어야 좋아할까’,
‘어묵을 구매하는 곳은 어떤 매장이 되어야 할까’ 등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니 답이 나왔습니다.


선대와 비교해 본인만의 경쟁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아버지 때까지는 ‘인정’과 ‘안정’이 사업의 지향점이었습니다. 물려받은 ‘인정’의 이념을 바탕으로 형성된 단골들에게 새로움을 전하기 위해 ‘도전’과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취임 초기에 가치관 차이로 아버지와 부딪히곤 했죠. 영도 본점을 어묵 베이커리 매장으로 리모델링하고, 간식형 어묵 상품을 개발하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을 때 반대에 부딪혔어요. 어묵 시장이 오래도록 좋지 않았으니 변화를 두려워했던 거죠. 끈질긴 설득 끝에 승낙받았고, 결국 지지해준 아버지 덕분에 지금의 삼진어묵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대 창업주와 2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오는 사업 원칙을 꼽아보자면요.
할아버지는 “사람이 먹는 것이니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묵의 원재료인 어육은 등급 좋은 것을 사용하고, 함량을 높여 제조합니다. 늘 그랬듯 삼진어묵을 좋은 재료를 사용해 바른 먹거리,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식품 기업으로 키우고자 합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삼진어묵의 미래를 그려놓았습니다.
바로 ‘어묵의 세계화’입니다.
한국의 어묵 문화를 세계적으로 대중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부산 영도구에는 삼진어묵의 중추부 역할을 하는 본사와 어묵체험역사관, 비영리법인 등이 자리해 있습니다. 이 지역을 거점으로 삼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는 1953년부터 지금까지 삼진어묵 본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진어묵이 시작된 곳이니만큼 지역 주민, 점포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 함께 상생하려 합니다. 본사 한편에는 ‘삼진어묵체험역사관’을 조성했습니다. 매출 목적이 아닌 어묵 문화를 전파하고자 만든 공간이죠. 삼진어묵의 비영리법인 ‘삼진이음’도 봉래동에 있습니다. 지역의 전통 기술을 활용한 청년 창업 장려 사업을 비롯해 오래된 유휴 공간을 활용한 도시 재생 사업 ‘대통전수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부산광역시, 영도구, 삼진이음이 함께하며 국·시비 약 180억 원을 투입했죠. 오랜 시간 삼진어묵이 자리하던 부산 영도구 봉래동이 다시 활기를 되찾는 데 삼진어묵이 이바지했으면 합니다.


가업 계승을 고민하는 청년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회계사를 꿈꾸다 가업을 승계했습니다만, 지난 선택에 충분히 만족합니다. 업(業)의 단점보다 장점을, 현재의 상황보다 미래 가능성을 봤기 때문입니다. 가업을 물려받기 전, 어묵 산업은 규모가 영세해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묵이 누구나 쉽게 맛보는 식품이고, 생선으로 만들어 영양가 있는 데다 위생적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봤죠. 좋은 점을 인식하고 희망적인 시선으로 다가간다면 어떠한 일이든 잘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삼진어묵의 다음 계획이 궁금합니다.

최근 ‘어메이징 팩토리’라는 스타트업을 만들었습니다. 상상 속 어묵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곳입니다. 그동안 어묵을 만들면서 생산 파트와 수없이 부딪혔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직접 만들어보는 조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설립했어요. 조만간 젊은 층을 타깃으로 프리미엄 핫바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삼진어묵은 어묵 제조를 넘어 소비자가 원하는 형태로 판매하고 소통하는 회사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세대를 만족시키고, 국내는 물론 세계인의 식문화에 어묵이 녹아들도록 할 겁니다.






사진 제공 삼진어묵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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